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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많다 있는 힘껏 감사하고픈 나날과 사람과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생이라니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인간인지, 이다지도 복이 많은 인간일 수 있는지. 나를 두른 복의 두께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오늘 같은 순간엔, 문득 아득해지곤 한다. 하나하나 보답해 드려도 끝이 없을 이 마음들 앞에서 내 진심이란 얼마나 미욱한지, 그리고 미숙한지. 내가 복이 많다. 내가 복이 참 많다. 내 생에 분에 넘치도록 주어진 분들과 날들과 것들에 빠짐없이 온 힘을 다해 감사하고픈, 오롯이 사랑하고픈 날. 일상의 중력이 발 밑을 끌어당기는 이 순간에도 전하고 싶은, 그럼에도 열없는 부끄럼 탓에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마음, 마음, 마음.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2019. 12. 18.
홀가분 지수 20% 그래도 뭐라도 하나 해 놓고 돌아가는 귀갓길은 아무렴 훨씬 낫다. 고마운 마음까지 받은 저녁이니 더욱. 낫다기 보단, 좋다. 더없이 좋다. 지하철 안에서 빼꼼히 드러난 누군가의 책등을 흘깃흘깃 곁눈질로 훔치며, 짧은 이 기록 뒤에 나도 모처럼 무엇이나 펼쳐볼까 싶은 심야의 문턱. 약 한 시간 뒤에 서둘러 잠을 자고, 여섯 시간 사십오 분 뒤에 일어나서 하루를 건너면 그래도 주말이다. 콧노래 지수 30% 도달 예정! 2019. 10. 17.
운명이다 요 며칠 출퇴근길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듣고 있다. 이른바 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곡. 나는 카라얀의 지휘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다른 건 몰라도 베토벤 5번만은, 적어도 내겐 카라얀이 압도적이다. 베를린필의 육중하면서도 둔중하지 않고, 경쾌하면서도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 연주도 일품. 내달리는 듯한 속도감에도 음률 하나하나에 세심함을 기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 곡만큼이나 내 운명의 향방도 참 모를 일이라는 까닭 모를 기분이 들곤 한다. 숨통을 조여올 것 같던 운명의 아귀가 돌연 등을 토닥이는 응원의 손길로 변하는 것 같은 느닷없는 변환에 또 한 번 힘을 얻는 일상의 순간들. 부제 때문인가, 이 곡엔 장면이 덧입힌다. 생의 마지막에 반듯이 누운 채로 하.. 2019. 9. 26.
thank you, love you 감사한 인사, 과분한 말씀, 따뜻한 미소. 대화의 틈마다 건네신 말들에 미처 마음을 다 전할 새도 없이 하루가 갔다. 넘치도록 받은 선물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시간들이 아쉬워 짧게나마 남겨보는 기록.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이를 수도 없는 일상이라니, 나는 정말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미욱한 나를 대신해 먼저 다가와주신 소중하기 그지없는 마음들로, 배웠다. 또 배우고 돌이켰다. 희한하다. 힘을 주는 말들에는 저마다의 빛과 온기가 음성 하나하나에 묻어 있다. 우울의 언어는 하나 같이 검고 탁한 데 비해, 희망과 용기의 언어가 다채로운 빛을 띠는 건 그 때문인가 보다- 하고 이제 와 생각한다. 어떤 진심 덕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만큼 고마웠고, 어떤 진심 덕에 울어버리고 싶을 만큼 감격했으며, .. 2019. 9. 4.
아직도 어려운 언어의 앞에서 서성였다. 고르고 골라도 말들은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 말들은 잔뜩 그리고 힘껏 움켜쥔 손 사이로 모래알처럼 대책없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남은 것이라곤 반짝임을 잃은 자모 몇 톨. 보잘 것 없는 나의 언어들을 뒤로 한 채 메신저 문자 사이를 일렁이는 커서를 보며 생각했다. 이럴 때만 되면 빈곤해지기 그지없는 내 말의 세계와, 정량 이상을 가까스로 끌어안은 지나친 마음과, 긴장을 놓았던 순간들이 만들어낸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미처 전해지지 못한 무언가- 끝내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무언가(無言歌)가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하게 만드는 무언가들. 생각할수록 늘어만 간다. 이런 때만큼 언어의 한계가 느껴지는 적이 있었던가 싶다. 어떤 의미론 말이란 게 단지.. 2019. 9. 3.
내 것의 힘 # 1. 어제까지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보를 들었다.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취향과는 제법 먼 곡들이다. 그럼에도 노래엔 힘이 있다. 강한 탄성(彈性)을 지닌 내 ‘듣는 귀’조차도 이 노래들 앞에선 일단 취향의 영역으로 잽싸게 튀어돌아가려는 성질을 멈춘다. 수록곡만 열여덟 개에 이르는 이 앨범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역시나 ‘테일러-다움’일 거다. 곡의 낱장마다 녹아든 그녀의 자아는 음악을 비집어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10년차 슈퍼스타와 인간 테일러 스위프트를 넘나드는 특유의 매력도 여전히 색을 더한다. # 2. 오늘은 종일 마이클 잭슨 앨범을 듣는다. 살아 있었다면 예순 한 번째 생일. 우리 나이론 예순 하고도 둘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의 생일이란 말은 슬픈 모순이다. 입에 머.. 2019. 8. 29.
조금이 만드는 지금 때론 아주 작은 것으로 하루가 조금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들 적이 있다. 늘 듣던 새벽 생방송 라디오를 대신해 무심코 둘러본 다시듣기 서비스에서 취향을 정조준하는 심야 프로그램을 만났다든지, 심지어 그 프로그램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아예 타이틀로 삼아 '노골적 편애'로 선전포고를 해 왔다든지, 게다가 그 많은 회차 중 야심차게 고른 편이 공교롭게도 그들의 '시작'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였다든지 하는 것들. 이를테면 오늘이 그렇다. - 라니, 지상파 라디오로선 흔치 않은 이름이다. 아무 칸이나 클릭했는데 하필 여름휴가 특집이랬다. 결성 무렵부터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까지, 타이틀의 주인공 그룹 되는 입장에선 더없이 지난했을 시간이 30분 남짓의 이야기로 재편된 '비틀즈 오딧세이' 편이었다. .. 2019.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