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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다 갔다 눈을 뜨자마자 유독 금요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오늘이 1월 31일인 탓이다. 끝과 끝이 동시에 맞물리는 게 아무래도 깔끔하니까. 조금 더 편한 걸, 조금이라도 덜 성가신 걸 지향하는 우리 안의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그런 쪽을 더 ‘좋은’ 것으로 인식하니까. 그 본성에 지극히도 충실하게, 나는 오늘이 월말이자 주말이라고 생각해 버렸던 것 같다. 물론 실망감은 이내 찾아왔다. 아, ‘무려’ 하루를 더 건너야 하는구나. 도합 48시간을 버텨야 찾아오는 휴식이라니. 평일을 간신히 견딘 뒤 맞는 이틀의 휴일은 지나치게 짧기만 한데 어째서 평상시의 이틀은 이렇게도 길기만 한 거냐며, 요 며칠 공들여 읽은 아인슈타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고작 이런 데서 역시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햇수론 공.. 2019. 1. 31.
지치지 말아야지 각오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숨을 돌렸다. 작은 마음을 감사히 보아주신 진심 덕에 조금은 힘을 얻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덕에 공연하거나 공연하지 않은 생각으로 잔뜩 무거워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공간을 잠시 둘러보았고, 나의 편협함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알량한 내지는 어쭙잖은 알은체로 애써 덮어 왔던 어떤 부족함에 얼굴이 금세 뜨거워졌다. 그 공간에 남은 누군가의 시간의 흔적에 마음이 눅눅해지는 밤. 온기가 있는 글은 가슴에 습도를 채운다. 요즘의 나는, 아니 언제나 그랬지만 무언가를 읽다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잦다. 마음이 자꾸만 닿아와설까. 진심과 마주한 자리마다 서리가 맺힌다. 좋은 걸까, 변화인 걸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 2019. 1. 30.
잊지 않아야 할 마음들을 위해 매 순간의 틈마다 감사할 것들이 많았다. 마음을 보듬는 사람과 행위들을 만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감사하고 싶었는데, 제때 전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지나쳐 왔다. 그 찰나들과 마음들을 잊지 않고자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놓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모든 것들을 최대한 기억하고 언제든 마음을 보태기 위해. - # 어제는 주임님이 도와주신 덕에 며칠을 내심 앓았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했다. 하고 나니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싶다가도, 역시 도움이 없었다면 여태 헤매고 있었겠지 하는 마음에 더 감사해진다. 내 컴퓨터의 문제도 있었지만, 기계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내 안의 ‘기계 한정 소심함’이 발동했던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이런 데서 아직까지 아마추어스러움을 벗지 못한 나. 아직 배워.. 2019. 1. 29.
그 아이네 집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 속 어떤 장면. 그 장면은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의 집에 내가 무작정 졸래졸래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집에서 우리는 너덧 살 터울의 그 아이 동생과 함께 어색한 소꿉놀이를 했다. 가구의 위치와 벽지 색깔까지 기억날 정도로 모든 것이 제법 또렷하게 남아 있는 집. 어떤 기억은 이렇게, 오직 단 몇 컷의 단상만으로 강렬하고 맹렬히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 초등학교 다니던 때 중 정말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이 딱 두 번 있다. 열 살 때와 열두 살 때다. 학교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일 그 나이에, 교실의 모든 것은 내겐 거대한 덫과 같아 보였다. 오늘도 부디 하루가 후딱 끝나 있기를 바라며 교실문을 열기 전 매일 심호흡을 했다. 나는 그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2019. 1. 27.
만취한 청년 어제 아침에 회사가 관할하는 지하철 선로에서 취객이 발견됐다. 공문상의 ‘주취자’는 20대 청년으로, 경찰에 인계돼 심문을 받을 때까지 술에서 깨지 못해 횡설수설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지하철 선로로 들어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술에 완전히 잠식돼 버린 듯했다고. 남자가 발견된 건 오전 6시 42분께. 다행히 러시아워를 빗긴 시간대였고, 종점에 다다른 구간이라 열차 운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마 그 시간에 나는 한창 회사로 가는 길이었을 거다. 어제는 7시 조금 넘어 사무실에 도착했으니, 그때쯤엔 내가 탄 열차가 대연역 즈음을 지나고 있었겠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감은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지역 대표 일간지라는 신문 두어 개를 눈으로 훑으.. 2019. 1. 26.
오늘을 잊지 말고 작년 이맘때의 기억이 없다. 불과 딱 1년 전인데. 애써 돌이키고 싶지도 않지만 구태여 떠올려보려 해도 시절 내내 진득하게 눌러붙은 불안과 분노나 실망의 끈적한 흔적만 간신히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블로그에 남긴 글이나 드문드문 썼던 일기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을 뻔했다. 오로지 횟빛으로 점철된 기억의 단면이다. 날짜들이 부옇게 흐러져 이내 시계 바깥의 영역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의심하고 내게 좌절했던 날들. 내 안의 소용돌이와는 상관 없이 흘러가는 바깥 세상을 보며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던 시간들이었다. 때론 인간으로서의 모멸과 을로서의 굴욕에 치를 떨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의 습격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의지나 생.. 2019. 1. 23.
정정당당한 애정 그곳에 갈 때면 접어올린 책 귀퉁이를 떠올렸다. 한강 남쪽, 자본의 양분을 입고 날로 기름져 가는 그 땅의 한 쪽에 터를 잡은 작고 낡은 집들이 모인 동네. 위태로운 임시가옥들이 몰린 작은 공간의 막다른 곳에 붙은 나지막한 오르막을, 나는 스물 언저리 몇 년 간의 금요일마다 오르내렸다. 거기에 보육원이 있었다. 육안으로도 지어진 지 족히 이십 년은 넘어 보였던 건물은 앞으로도 그만치의 나날들을 더 건너야 한다는 듯 묵묵히 풍화되고 있었다. 그런 곳을 ‘슬럼’이라 부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마치 땅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고 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허용된 공간 같았던 그곳은, 부촌의 귀퉁이를 접어올린 듯 이질적이고도 절박한 인상으로 이따금 다가오곤 했다. 그 보육원에서 봉사활동.. 2019.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