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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3

2017년 이상문학상 변론, 그리고 <랩소디 인 베를린> 새해가 밝았다고 말하기도 머쓱해지는 시간이다. 그새 이상문학상은 마흔 한 번째 이야기를 선보였다. 언제부턴가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지 않으면 새해를 맞지 못한 기분이 든다. 챙겨보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손꼽아 보니 어느덧 아홉 회차다. 문단에서 정평난 작가들조차 매년 막달을 설레게 한다는 상 ― 작품집은 1월에 발간되나 발표는 12월에 이뤄진다 ― , 작가 인생의 가장 굵직한 한 줄이자 평생의 힘이 되어준다는 상, 무엇보다 비슷한 명성의 상들이 한 차례는 겪었던 설화와 파문이 여직 없었던 상. 작가의 글과 세계에 관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인정이 바로 이상문학상일 것이다. * * * 본론에 들어가기 전, 곁가지 얘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한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논란에 관해서다... 2017. 1. 30.
<천국의 문>, 김경욱 그리고 그 외 : 2016 이상문학상 작품집 ​ ㅡ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가 전부 그럴듯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허구는 모두 어느 정도 사실에서 출발한다. 야구 기록원은 어릴 적 꿈이었고 법대에 진학해서 사법고시를 보라는 부모의 압력 속에 십대를 보냈으며 언젠가는 독창적인 스파이 소설을 써보리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니, 흐릿한 조명 밑에서 다리를 떨며 즉흥적으로 지어낸 삶들은 이 세계와 나란히 달려가는 어떤 세계에서 또 다른 내가 꾸려가는 인생일 수도 있었다. 평행우주이론이 뭔지는 몰라도, 무심코 내린 작은 선택으로 나를 비껴간 숱한 삶을 상상하다보면 정신이 바늘구멍을 드나들 만큼 날카롭게 집중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바늘구멍으로 다른 세상을, 이 광대한 우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 2016. 8. 22.
<뿌리 이야기>, 김숨 “당신은 천근성 쪽일까?” 어떤 포도농장들은 포도나무들 사이사이에 민들레나 토끼풀 같은 잡풀을 심기도 한다는 걸 그는 모르는 듯했다. 포도나무가 물을 얻으려 잡풀과 경쟁하느라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천근성인 포도나무 뿌리가 태생적인 기질을 거스르고 땅속 깊이 내리면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을, 수평을 지향하는 천근성 식물과 수직을 지향하는 심근성 식물을 밀식하면 뿌리의 모양과 성장 특성이 달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경쟁하듯 키 재기를 하면서 서로를 도태시킨다는 것을, 천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영역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말려 죽인다는 것을. - 김숨, --- 올해 이.. 2015.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