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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3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역사가 아직은 느리게 나아가던 시절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사건들이 쉽게 기억 속에 새겨졌고, 누구나 아는 배경을 이루었으며, 그 배경 앞에서 개인사가 모험들로 가득한 매혹적인 공연을 펼쳤다. 오늘날, 시간은 성큼성큼 나아간다. 역사적 사건은 하룻밤이면 잊히고 말아 다음 날이면 이미 새로운 날의 이슬로 반짝인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이제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개인사의 너무나 친숙하고 진부한 배경 위로 펼쳐지는 놀라운 모험이 되었다.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p.20) --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뉴스 타전.. 2015. 7. 19.
어쩌면 주제 넘는 고민 아직은 아픈 손가락인가 보다. 놓친 본방송을 기어이 찾아보고야 말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선지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자기반성과 변화는 필요한 때니까. 다만 방송이 꿈꾸는 '언론의 민낯'엔 아무래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언론의 민낯이 뭐길래? 정의라는 열쇠를 빌려 무단침입을 일삼는 특권의식? 물먹기 싫은 자신은 숨기고 데스크 탓부터 하고보는 위선적인 면죄부? 언론의 민낯이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야말로 이젠 벗어버릴 때 아닌가? 환경과 사람이 그대로인 어느새고 그곳의 민낯이 볼 만했던 적이라도 있었나 싶다. 부쩍, 언론이란 플라톤 류의 이데아가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이런저런 미사와 흠결 없는 이론들로 견고하게 구축됐지만 실존여부는 확인되지 않는 천공의 성. 이데아 세계에 세워진 이 튼튼한 성은 .. 2014. 7. 27.
아무것도 몰라요 모 종편채널에서 리모컨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시선을 고정했다. 조금만 더 보면 달라지겠지, 들을 만한 게 나오겠지. 조금만 더... 그러다 결국 그걸 두 시간이나 꾸역꾸역 다 보고 앉은 못난 인내심(혹은 우유부단)을 탓하고야 말았다. 치뜬 눈만큼 목에도 힘을 잔뜩 넣은 앵커는, 국가비상상황이라도 알리듯 비장한 얼굴로 숨진 교주 장남의 소식을 전했다. 잘 들지도 않아 몇 번이나 쑤시기를 반복해야 하는 녹슨 창처럼 귀를 연신 찔러대는 음성이었다. 의도치 않게 청자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소식이랄 것도 없었다. TV판이자 정치판 타블로이드 한 편 거하게 읽은 느낌이었다. 패널들은 앵커를 사이에 두고 원탁에 모여앉아 덩달아 핏대를 올렸다. 갈수록 쩌렁쩌렁하고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겹치고 엎어지고 잘.. 2014.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