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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4

<절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인간은 평생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존재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나와 같은 이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의뭉스런 궁금증으로 다가온다. 진짜로 존재할까 싶은 묘한 호기심, 그러면서도 진짜로 존재하면 어쩌지 싶은 공포 따위의 것들. 수백 년 문학의 역사에서 '분신'이란 소재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존재로써 나를 알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 닿아있는 지점이, 바로 '분신' 모티프인 것이다. 나보코프의 은 분신에 관한 이야기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렇다. 자신과 똑 닮은 (것이라 생각하는) 이를 통한 완전범죄를 꿈꾸는 한 예술가의 심리를 현란한 언어로 그려낸 소설. 대표작 에서 여지없이 드러낸 그만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어딘.. 2016. 8. 23.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 『 그녀는 재빨리 내게로 몸을 돌리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려 내 머리를 끌어안고는 뜨겁고 힘찬 키스를 퍼부었다. 그 긴 이별의 키스가 누구를 찾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굶주린 듯 그 달콤한 맛에 취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다시는 반복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09, ) 내 첫사랑은 수학책 귀퉁이에 깨알 같이 끄적인 글자들과 함께 사라졌다. 사전적 의미만 아니라면, 나는 열다섯 무렵에 첫사랑을 시작했다. 당시 수학선생님은 어떤 의미에선 조금 별난 분이셨다. 주에 한 번 꼴로, 수업 전 교과서 귀퉁이에 '지금 이 순간 피어오르는 생각'을 두세 줄 정도로 쓰라 하셨다. 그때의 나는 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에 수반된 이런저런 것들을 제외한 남은 생각의 공간을 모조리 '그 .. 2016. 1. 24.
Noon ::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Doris Lee, 'Noon') 1월은 눅눅하고 따뜻했다. 2월에는 날씨에 속은 개나리가 꽃을 피웠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계속 선물 공세를 펼쳤다. 그녀의 생일에는 이미 언급했던, 암사슴을 연상시키는 정말 예쁜 자전거와 더불어 『현대미국회화사』를 선물했다. … 그러나 그림에 대한 심미안을 키워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도리스 리의 그림을 보더니 건초 위에서 낮잠을 자는 남자가 전경에 그려진, 짐짓 관능적인 자태를 뽐내는 말괄량이의 아버지냐고 물었고, 내가 그랜트 우드와 피터 허드는 훌륭하지만 레지널드 마시와 프레더릭 워는 형편없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했다. (p.318)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2015. 8. 27.
대심문관 ::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트르 도스토옙스키 -- 이봐, 알료샤, 모든 인간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그 고뇌로써 영원히 조화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그 속에 끌어들여야 하느냐 말이야? 그걸 나한테 말해줄 수 없겠니?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고통을 겪어야 하고, 그 고통으로써 조화를 보상해야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재료 속에 끼어들어 남을 위한 미래의 조화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거냐? (p.400) -- 광야에서의 첫째 물음은 바로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 거야. ...그것은 "누구를 숭배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지. 자유를 누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괴롭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는 한시 바삐 자기가 숭배할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인간은 .. 2014.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