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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순간

아직도 어려운

by 디어샬럿 2019. 9. 3.

언어의 앞에서 서성였다. 고르고 골라도 말들은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 말들은 잔뜩 그리고 힘껏 움켜쥔 손 사이로 모래알처럼 대책없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남은 것이라곤 반짝임을 잃은 자모 몇 톨. 보잘 것 없는 나의 언어들을 뒤로 한 채 메신저 문자 사이를 일렁이는 커서를 보며 생각했다. 이럴 때만 되면 빈곤해지기 그지없는 내 말의 세계와, 정량 이상을 가까스로 끌어안은 지나친 마음과, 긴장을 놓았던 순간들이 만들어낸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미처 전해지지 못한 무언가- 끝내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무언가(無言歌)가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하게 만드는 무언가들. 생각할수록 늘어만 간다.

이런 때만큼 언어의 한계가 느껴지는 적이 있었던가 싶다. 어떤 의미론 말이란 게 단지 매뉴얼에 불과한 것 같기까지 하다. 의사소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핵심 앞에서 언어는 그 원심력을 이겨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형이상학이 형성해 낸 궤도를 맴돌 뿐 다가서진 못하는 언어를 볼 때마다, 이 존재의 태생적 한계가 양각으로 눈앞에 돋아오르는 느낌이다. 소통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기호' 이상이 될 수는 없단 사실 등등... 농밀한 감수성의 인간 혹은 타고난 언어의 천재들 덕에 놀랍도록 증폭된 이 기호의 세계도, 결국 '편의'를 넘어서는 것들 앞에선 거침없는 진격을 거두고 만다. 뒷걸음질 치는 언어 앞에서 나는 이내 아득해진다.

조금 더 무심하거나 조금 더 능숙하거나 조금 더 세심하거나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가까운 말이나마 찾을 수 있을까. 전하지 못한 채 홀로 겹겹이 쌓이는 마음을 표현할 말들을 만날 길이 아직 내 경험의 지평에선 요원하기만 하다. 조금 더 세련되지 못하고 조금 더 진실하지 못한 순간들 - 이를테면 오늘 같은 날 - 을 노렸다는 듯 맹렬히 튀어나와 버리는 미숙함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겹치는 요즘. 언어 혹은 일상 이상의 것들은 자꾸만 쌓이고, 나는 이렇게나마 그 '이상'들의 흔적을 기록한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더 찾을 수도 없는 언어들 곁을 배회하다 결국은 돌아오고 만,
내 지금의 말들을 보내보는 하루의 끝.
나를 지탱해주시고 내 일상이 되어주시는 분들을 위한
언어 이상의 온기 그리고 마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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