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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조금이 만드는 지금

by 디어샬럿 2019. 8. 20.

때론 아주 작은 것으로 하루가 조금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들 적이 있다. 늘 듣던 새벽 생방송 라디오를 대신해 무심코 둘러본 다시듣기 서비스에서 취향을 정조준하는 심야 프로그램을 만났다든지, 심지어 그 프로그램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아예 타이틀로 삼아 '노골적 편애'로 선전포고를 해 왔다든지, 게다가 그 많은 회차 중 야심차게 고른 편이 공교롭게도 그들의 '시작'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였다든지 하는 것들. 이를테면 오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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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라디오>라니, 지상파 라디오로선 흔치 않은 이름이다. 아무 칸이나 클릭했는데 하필 여름휴가 특집이랬다. 결성 무렵부터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까지, 타이틀의 주인공 그룹 되는 입장에선 더없이 지난했을 시간이 30분 남짓의 이야기로 재편된 '비틀즈 오딧세이' 편이었다. 몇 번이나 엎어지고 한눈을 팔며 미래가 없다는 둥 싸워댔던 청춘들의 서툰 시간들, 인류 음악사에서 이토록 명징한 존재감으로 남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싶은 희미하고 흐릿한 시절들, 몇 시간 뒤조차 예상할 수 없으리만치 울퉁불퉁한 인생들... 그들 입장에선 시쳇말로 대책도 답도 없는 때였을 거다.

 

삶이 한 치 앞은커녕 방향조차도 일러주지 않을 적의 시간은 여느 때의 그것과 질량부터가 다르다. 발목에 진득히 들러붙는 걸쭉한 불안을 떨치며 건너는 짙은 나날들, 혹은 '버틴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순간들이 한 인생에 차지하는 밀도란... 젊으니 견뎌낼 수 있을 거란 말로는 그런 시간이 가진 거대한 중력장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일생의 뿌리까지 아래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이라 하면 비할 바나 될까. 끝도 없는 우울 혹은 격랑의 시간이란 그렇다. 청춘의 특권 혹은 미덕인 양 칭송하기에 그런 시간들은 으레 지나치게 불친절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명성을 떨치기 직전까지 거듭됐던 광폭한 역경이, 비틀즈라는 그룹의 신성불가침한 성공을 축조해냈다는 것 역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간이 빚어내는 역설이란 게 이런 걸까. 시련을 덧입고 드라마틱해지기까지 한 천재의 삶과, 그 삶을 바라보는 범재 혹은 둔재들을 나는 잠깐 생각했다. 누구나 삶이 통째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블랙홀 같은 시간을 한 번쯤은 통과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인생의 농도는 이다지도 다른가. 그러고 보면 세간에 내놓을 법한 인생이란 딱 30분으로 축약될 수 있는 초 고농도의 삶인 건 아닐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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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분명 조금 달랐다. 조금 더 웃었고, 조금 더 가까워졌고, 조금 더 과감해졌고, 조금 더 애틋해졌다. 조금 더 터놓았고,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며, 조금 더 전진했고, 조금 더 용서했다. 조금 덜 화냈고, 조금 덜 초조해했으며, 조금 덜 슬퍼했고, 조금 덜 좌절했다. 조금 덜 의심했고, 조금 덜 미뤘으며, 조금 덜 미워했고, 조금 덜 울었다.

 

나를 포함한 범재(凡才)들의 인생이 조금은 이와 같지 않을까. 가까이선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금'들이 제법 질서정연하게 모여, 발을 멀리 둘수록 윤곽을 드러내는 그럴듯한 점묘화 같은 것 말이다. 고농축은 못 돼도 제 몫의 농도만은 삶을 더해갈 수록 짙어지는 인생. 그 정도만 돼도 꽤나 성공한 삶일 거다. 그러니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조바심낼 것도 없다. 조금은 달랐던 하루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또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흘려보낼 나날보다 조금씩 더 달라지는 내가 되기를, 하고 조용히 기도해보는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조금 더 기뻤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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