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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5

<농담>, 밀란 쿤데라 ​ ㅡ 과거의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네크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네크가 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pp.490-.. 2016. 8. 2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p.12-13) 내겐 쿤데라를 향한 첫 여정인 책이었다. 첫인상을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밤하늘의 급.. 2015. 7. 21.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역사가 아직은 느리게 나아가던 시절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사건들이 쉽게 기억 속에 새겨졌고, 누구나 아는 배경을 이루었으며, 그 배경 앞에서 개인사가 모험들로 가득한 매혹적인 공연을 펼쳤다. 오늘날, 시간은 성큼성큼 나아간다. 역사적 사건은 하룻밤이면 잊히고 말아 다음 날이면 이미 새로운 날의 이슬로 반짝인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이제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개인사의 너무나 친숙하고 진부한 배경 위로 펼쳐지는 놀라운 모험이 되었다.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p.20) --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뉴스 타전.. 2015. 7. 19.
<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 비교를 통해 나 자신을 설명해 보겠다. 교향곡은 음악의 서사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질러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도하며 점점 더 멀어지는 여행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 또한 여행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인간은 거대한 무한의 심연과 작은 무한의 심연 사이에서 산다고 말한 파스칼의 생각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변주의 여행은 이 다른 무한 속으로, 다시 말해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나아간다. … 변주라는 형식은 집중이 극대로 발휘된 형식이다. 이 형식은 작곡가에게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고 사물의 핵심에 곧장 다가가게 한다. … 변주가 거듭될 때마다 베토벤은 점점 더 원래 테마로부터 멀어져서 원래.. 2015.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