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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3

러시아식 서정, 리히터의 '이 한 장의 음반' 어느 때건 유난히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봄에는 비발디를 찾게 되고 가을이면 브람스가 그리운 것처럼. 겨울, 특히 이 무렵은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계절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알알한 연횟빛 겨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생각이 난다. 일상의 틈으로 옛 러시아 작곡가들의 멜로디가 예고 없이 흘러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창창한 날조차도 씁쓸한 쓸쓸함이 맴도는 이맘때의 대기 같다고 할까. 낭만파의 마지막 수호자 내지는 최후의 낭만의 기수라 불리는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이들의 음악은 화려하면서도 투박하고 섬세하면서도 둔중하다. 그 미묘하고도 야릇한 낭만으로 건조한 날들을 축이는 게, 요즘의 작은 사치다. 리히터의 차이코프스키-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시리즈는 여러모로 '단 한 장'의 .. 2015. 1. 16.
Splendor in the Grass - Pink Martini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무심결에 듣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만에 만난 멋진 곡이다, 이런 분위기의 노래가 별로 취향이 아닌데도. 꽉 채워지지 않은 일상으로 침투한 나른한 여유가 한껏 묻어나는 뮤직비디오. 왠지 모르게 넋 놓고 보게 된다. 보정감을 최대치로 올려 쨍쨍하기까지 한 색감이, 고즈넉하기까지 한 컷 하나 하나에 기가 막히게 스며들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간주부 악곡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중 1악장. 곡의 전반적인 모티프로도 쓰였다. 클래식을 이렇게도 재해석할 수 있다니. 시간을 건넌 선율이 이런 방식으로도 숨을 쉴 수 있구나 싶다. 음악이란, 예술이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마르타 아르헤리치. 샤를 뒤투아가 지휘한 .. 2014. 12. 23.
Oh, Captain! My Captain! . . . 영화 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이 곡을 휘파람으로 불며 등장한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오늘따라 유난히 구슬프게 들린다. 음 하나하나가 무게를 실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이다. 빠른 템포도, 심지어는 이 곡의 메인인 장조풍 변조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운 음률에 더 가슴이 아리다. 그토록 고운 음악을 남긴 차이코프스키도 평생을 우울증과 싸웠더랬다. 타인을 행복하게 했지만 정작 자신은 불행했던 인생들...이라니. 어딘지 잔인하단 생각도 든다. 하나 같이 따뜻했던 영화들이었다. 분명 마음자리가 넓은 사람이었으리라. 갑작스런 그의 부재로 새삼 지난 시간을 돌이키게 된다. 이런 소식에서야 그를 추억하는 알량한 기억을 탓하며. 그가 나온다면 믿고 봤다... 2014.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