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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문학4

<농담>, 밀란 쿤데라 ​ ㅡ 과거의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네크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네크가 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pp.490-.. 2016. 8. 2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p.12-13) 내겐 쿤데라를 향한 첫 여정인 책이었다. 첫인상을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밤하늘의 급.. 2015. 7. 21.
<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 비교를 통해 나 자신을 설명해 보겠다. 교향곡은 음악의 서사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질러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도하며 점점 더 멀어지는 여행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 또한 여행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인간은 거대한 무한의 심연과 작은 무한의 심연 사이에서 산다고 말한 파스칼의 생각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변주의 여행은 이 다른 무한 속으로, 다시 말해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나아간다. … 변주라는 형식은 집중이 극대로 발휘된 형식이다. 이 형식은 작곡가에게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고 사물의 핵심에 곧장 다가가게 한다. … 변주가 거듭될 때마다 베토벤은 점점 더 원래 테마로부터 멀어져서 원래.. 2015. 7. 18.
열한 번째 계명 :: <불멸>, 밀란 쿤데라 기자들은 질문이라는 것이 단지 손에 수첩을 들고 겸손하게 설문조사나 하는 그런 리포터의 작업 방식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고 있었다. 기자란 그저 질문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어떤 주제에 관해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지닌 자다. ... 기자의 권력은 질문을 던질 권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요구할 권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이다. 부탁하건대, 모세가 정리한 하느님의 십계명 가운데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짓말 마."라고 말하는 자는 그 이전에 "대답하라!"라고 말했을 게 분명한데, 하느님은 타인에게 대답을 강요할 권리를 누구에게도 부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명령하는.. 2014.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