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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19

비인간의 기록 : 편혜영, <재와 빨강> 편혜영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 못 되었다. 굳이 가르자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글엔 될 수 있는 한 호오를 가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임에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소설을 접한 지가 벌써 3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마저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으로였고, 단행본으로는 10년 전의 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작가의 글은 소위 취향을 탔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배에 승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당시의 나를 질겁하게 했다. 편혜영의 소설 속 도시들은 하나 같이 위태로웠고, 인간은 가장 초라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 던졌다. 가뜩이나 비위도 약한 나는 그 소설들을 견뎌내질 못했다. 꾸역꾸역 읽다가, 인간을 저며 모조리 통조림에 넣어버린 어느 소설에선 책장을 덮고 헛구역질을 했.. 2017. 2. 23.
관능적인 혹은 원시적인 폭력 : 한강, <채식주의자> 처음 한강이란 작가에 관심을 가진 게 2년 전쯤이었던가. 교보문고 시집 코너에서 우연히 그녀의 것을 발견했다. 내가 아는 한강은 소설가인데 언제 시를 썼지 싶어 표지를 들쳤더니, 그런 의문은 넘치게 받았다는 듯 이력 제일 첫 줄에 기입돼 있었다, 1993년 시로 등단했다고. 그 길로 사서 읽은 가 한강과의 첫 조우였다. 너끈한 시간을 들여 겨우 읽은 시들엔 껍질이 벗겨진 언어들이 이지러져 있었다. 끝없이 갈아지고 빻아진 언어가 고요히 비명을 내지르는 듯했다. 그것은 어떤 아픔이기 이전에, 언어를 향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읽은 것이 이었을 것이다. 언어와 세계를 집어삼키는 각자의 어둠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앞에서 소설 속 언어들은 치열하게 발버둥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한 문장.. 2017. 2. 22.
문학상 두 편과 <너무 한낮의 연애> 1.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서울역을 서성거리다, 그 책을 보았다. 서울역엔 항상 분주한 속도감이 묻어 있었다. 시간에 쫓긴 시선과 마음들이 항상 그 공간의 공기에 섞여 있었다. 하행선 열차를 기다릴 적이어도, 거기선 편안함보단 영문 모를 초조함을 느낄 때가 더 많았다. 서점은 그곳에서 유일하다시피 홀로 느긋하게 서 있었다. 나는 걸음을 약간 늦추고서, 책들이 사람보다 곱절 이상은 많은 그 작은 곳으로 나른하게 몸을 집어넣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가판대가 길을 막았다. 아마도 해의 초입이었던 것 같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전성태 작가의 얼굴이 새겨진 이었다. 전성태 작가와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그 해를 기준으로 5-6년 정도 됐을 터였다. 일단 다른 것부터 보고 있자, 생각나면 사면 되지.. 2017. 2. 5.
2017년 이상문학상 변론, 그리고 <랩소디 인 베를린> 새해가 밝았다고 말하기도 머쓱해지는 시간이다. 그새 이상문학상은 마흔 한 번째 이야기를 선보였다. 언제부턴가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지 않으면 새해를 맞지 못한 기분이 든다. 챙겨보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손꼽아 보니 어느덧 아홉 회차다. 문단에서 정평난 작가들조차 매년 막달을 설레게 한다는 상 ― 작품집은 1월에 발간되나 발표는 12월에 이뤄진다 ― , 작가 인생의 가장 굵직한 한 줄이자 평생의 힘이 되어준다는 상, 무엇보다 비슷한 명성의 상들이 한 차례는 겪었던 설화와 파문이 여직 없었던 상. 작가의 글과 세계에 관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인정이 바로 이상문학상일 것이다. * * * 본론에 들어가기 전, 곁가지 얘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한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논란에 관해서다... 2017.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