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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이 뭐라고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곤 급히 저녁준비를 했다. 아침에 산 두부를 조리고, 잠자고 있던 애호박도 깨워 새우젓에 후루룩 볶았다. 번갯불에 굽듯 햄도 부치고 달걀도 후딱 말고 있는 반찬 몇 개 내니 얼추 모양새는 갖춰졌는데... 역시 한국인인지라 국이 없으니 허전하다. 마땅한 걸 찾다 냉장고 귀퉁이서 오늘내일 하던 콩나물을 발견. 양지머리를 사다가 육개장(경상도식 쇠고기국)까지 끓이고 나니, 그제야 뭔가 저녁밥상 같다. 국은 의외의 부분에서 신경이 쓰인다. 육개장만 해도 그렇다. 고추씨를 기름에 볶아 걸러내 고추기름을 짜는 과정도, 핏물 잘 닦은 양지머리를 적당히 삶아 우리는 과정도, 좀 번거롭긴 해도 별 건 아니다. 복병은 불이다. 이런저런 레시피에선 불에만 올려두면 다 끝난 것처럼 주부(!)를 독려하지만.. 2014. 7. 24.
열일곱의 위안 해가 지더니, 눈치채지 못하는 새 비다. 놓쳤던 지난 2주분 푸른밤을 '경건히' 영접하기 위해 튠인라디오를 켰다. 마이클잭슨 특집이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노래들이 지난 전파를 타고 물길처럼 흘러들었다. 가슴을 적신다는 게 이런 걸까. 새삼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익히 알지만 또 들어도 좋은 비화들,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일화들, 하나하나 공감 가는 사연들. 얼마만에 접해보는 보드라운 이야기들인지. 나는 온전히 라디오에 녹아들었다. 그의 음악은 참으로 다양한 인생들의 단면을 채우고 있었다. 추억들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어느덧 그가 이곳을 떠난 지도 5년째. 사람들은 그립고 때로는 슬프다. 이따금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누구나의 .. 2014. 7. 24.
새삼스런 아침 한 달 여 만에 아침 조깅을 나섰다. 모처럼의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근 열흘 만이었던가. 마른 하늘이 반갑고 아까워 도무지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한여름의 깨질 듯 투명한 하늘과 기세 좋게 자리한 녹음, 햇발에 반짝이는 물빛과 무르익은 바다내음... 수없이 본 풍경이건만 새삼스럽게도 애틋했다. 횟빛 아침을 열 번이나 맞고서야 느끼는 보얀 아침의 소중함이라니.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일상의 가치를 놓쳐온 걸까. 작은 것에도 사람에도 늘 감사하자는 다짐은 매일의 홍수에 가라앉아버리기 일쑤. 간만의 창창한 동백섬은 그래서 고마웠다. 뛰다 걷다 하며 몇 번이고 기억했다. 곧 올 장마 전까지 많이 봐 둬야지. 그나저나 정도전 끝났다. 1화부터 봐 와선지 마음이 헛헛하다. 6년 만에 본방사수한 주말사극이었다... 2014. 7. 24.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이곳 바다도시에도 어느덧 열대야가 찾아왔다. 선풍기 가까이 대자로 뻗어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여름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지만 예외가 있다면 이 순간이다. (나름 고층임에도) 열어젖힌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여행객의 들뜬 노랫소리와, 익숙한 선풍기 바람. 오늘은 종일 몸이 무거웠다. 후텁지근한 여름습기가 어깨 위로 축축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크게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잠이 쏟아진다. 황금같은 토요일밤에 왠지 억울하지만. 으 진짜 잠들 것 같으니 빨리 끝맺어야지. 달콤유쾌한 스티비 원더를 듣다가. 노래만큼이나 기분 좋은 꿈을 꿨으면- "그냥,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어 전화했어요." (2014.06.28) 2014. 7. 24.
흑백의 쳇 베이커 쳇 베이커는 일관되다. 어딘지 흑백의 모노컷 느낌이다. 그늘 한 자락을 이고 있는 듯한 인상. 공허라든지 고독 따위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이이의 모습이 아닐까 싶지만, 그럼에도 까마득한 칠흑보단 어스름한 담흑의 이미지. 그의 트럼펫 사운드도 그를 닮았다. 어둡지만 마냥 무겁지 않다. 나른하면서도 힘이 빠지지 않고, 여백을 주면서도 빈틈이 없다. 싱코페이션과 임프로비제이션의 남용을 자제한 '최소한의 것들'의 미학이랄까. 노래도 곧잘 했는데, 타고난 음색마저도 그 흔한 꾸밈음 하나 없이 담백하다. 이쯤되면 천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수와 우울의 아이콘(!) 쳇 베이커 연주 및 노래, "Let's Get Lost". 메이저 멜로디의 밝은 진행에도 어김없이 덧입혀진 담흑빛 음색이 매력적이다. (2014.0.. 2014. 7. 24.
첼로의 매력 새삼 첼로에 빠졌다. 중후하면서도 곧 부서질 듯 여리고, 투박하면서도 놀랍도록 섬세하다. 이율배반적인 음색이 영 사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다. 연주자의 심장과 가장 맞닿아 있다는 이 악기는, 묘하게도 사람의 음성과도 가장 유사한 음파와 높낮이를 지녔다 한다. 들을 때마다 괜한 위안을 얻는 건 그 탓이려나. 오펜바흐 작곡, 재클린 뒤 프레 연주의 "Jacqueline's Tears". 침잠한 마음에 말없이 스며들어 눈물마저 어루만질 듯 애잔한 연주가 일품이다. 첼로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자, 이 이상의 연주가 아직 나오고 있지 않은 곡이기도. 어쩌면 비현실적이리만치 비참했던 그녀의 일생이 녹아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가슴을 울리는 건. (​2014.06.26)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