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다 갔다

눈을 뜨자마자 유독 금요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오늘이 1월 31일인 탓이다. 끝과 끝이 동시에 맞물리는 게 아무래도 깔끔하니까. 조금 더 편한 걸, 조금이라도 덜 성가신 걸 지향하는 우리 안의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그런 쪽을 더 ‘좋은’ 것으로 인식하니까. 그 본성에 지극히도 충실하게, 나는 오늘이 월말이자 주말이라고 생각해 버렸던 것 같다. 물론 실망감은 이내 찾아왔다. 아, ‘무려’ 하루를 더 건너야 하는구나. 도합 48시간을 버텨야 찾아오는 휴식이라니. 평일을 간신히 견딘 뒤 맞는 이틀의 휴일은 지나치게 짧기만 한데 어째서 평상시의 이틀은 이렇게도 길기만 한 거냐며, 요 며칠 공들여 읽은 아인슈타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고작 이런 데서 역시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햇수론 공교롭게도 3년차, 만으론 이제 갓 1년을 넘긴 사회생활로 두 번의 1월을 맞았다. 첫 번째 1월은 거대한 블랙홀. 내 일상과 감정과 인간다움이 남김 없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1월은 조금 다르길 바랐고, 다행히 무탈히 흐르는 시간들을 피부로 느끼며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씩 나를 포위해 오던 불안한 공기들을 애써 모른 척한 것일 수도 있고, 그조차도 느끼지 못할 만큼 둔감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오늘에 와 생각한다. 1월을 단 하루 남겨뒀던 오늘에 이르러, 나는 한 번 더 맞이한 1월에 흠씬 두들겨 맞은 것만 같은 기분과 마주해야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고 나는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한 바탕 눈물을 쏟고, 그래도 다 풀고 난 후에 그나마 웃으며 그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늘 머리를 맴돌던 그 문장이 음성화돼 입 밖으로 나왔고 그것이 내 청각을 통해 다시 머리로 입력되는 순간, ‘세상’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위태롭게 들렸다. 단지 시간, 분절할 수 없는 그것의 가늠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을 오직 언어로만 잘라낸 어떤 시간(世)의 위를 아슬아슬 딛고 선 사람들의 모습이, 그 단어를 말하는 순간 상상됐다. 좁은 시간의 위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대는 것이야말로 지구촌의 삶인가.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외줄타기와 놀랍게도 닮아 있는 셈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세상은 쉽지가 않을 수밖에 없네.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팀장님의 농담에 방정 맞은 웃음을 터뜨리던 그 순간, 나는 돈과 돈을 버는 행위를 탄생시킨 세상이란 것의 무서움을 새삼 생각했다.

그래도 좋은 분들 덕에 가까스로 이 상태고, 그러니 일단은 유지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진화하더라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까지는 유지될 나의 일상의 일정 부분. 내게 건네신 말씀과 사과가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너무 잘 안다. 나였다면, 과연 그렇게 반복해서 미안스러움을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더 힘을 내어 감사해야 하는데, 힘이 나지가 않았다. 힘이 없어 부족한 감사로 갈음해야 하다니,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싶었다. 한 시간 가까이 눈물을 쏟은 탓에 이따금 휘청이는 다리를 가까스로 통제하며 생각했다. 기운이 이 정도까지 빠져버리면 감정도 사치스러운 것이 되는구나 하고.

채우지 못하고 전하지 못한 감사가 남긴 아쉬움과 함께 1월이 다 갔다. 뚜벅뚜벅 걸어서 시작했는데 기어이 엉금엉금 기어서 간신히 도착한 두 번째 1월의 끝이 세 시간도 남지 않았다. 하루의 말미에 감사한 것들을 곱씹으며 조금 힘을 내어봤다가, 뜻하지 않은 일격에 다시 휘청이며 탈진해 버리고 마는 1월이 다 갔다. 아 라는 탄식조차 내뱉을 수 없는 한밤의 느닷없는 그것은 아...... 뭐라 말해얄까 그건 정말, 진짜라면 지난 1월의 블랙홀은 비교도 되지 않는 절대 진공이라고 밖에. 천문학자들이 최근에서야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우주 가운데의 그 크기를 알 수가 없는 철저하고도 절대적인 무(無)의 세계. 별도 공기도 그 어떤 화학적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없음’ 말이다. 유일한 위로나 마찬가지였던 그것마저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나의 그 시간은 기어이 무엇으로 전락하고 말지, 그 ‘절대 공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1월이 다 갔고, 1월의 마지막 날을 위해 비축해 둔 무언가들이 완전히 방전됐다. 나는 쏟아지는 피로에 눈을 감다 뜨길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이 일기를 간신히 마무리하고, 평소보다 조금 이른 잠을 준비한다. 제발, 아직 나의 우주는 절대 진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굳건하다기보단 끈적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믿음 신뢰 따위를 감히 입에 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