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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순간

정정당당한 애정

by 디어샬럿 2019. 1. 22.

그곳에 갈 때면 접어올린 책 귀퉁이를 떠올렸다. 한강 남쪽, 자본의 양분을 입고 날로 기름져 가는 그 땅의 한 쪽에 터를 잡은 작고 낡은 집들이 모인 동네. 위태로운 임시가옥들이 몰린 작은 공간의 막다른 곳에 붙은 나지막한 오르막을, 나는 스물 언저리 몇 년 간의 금요일마다 오르내렸다. 거기에 보육원이 있었다. 육안으로도 지어진 지 족히 이십 년은 넘어 보였던 건물은 앞으로도 그만치의 나날들을 더 건너야 한다는 듯 묵묵히 풍화되고 있었다. 그런 곳을 ‘슬럼’이라 부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마치 땅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고 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허용된 공간 같았던 그곳은, 부촌의 귀퉁이를 접어올린 듯 이질적이고도 절박한 인상으로 이따금 다가오곤 했다.

그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아이들의 방과 후 교습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인근에선 가장 가까운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가 컸다. 그마저도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도 제법 걸어 들어가야 했다. “대학가에서 멀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처음엔 몇 번 오다가 나중엔 발길을 끊더라고요.” 스무 살이 되던 해 4월, 나갈 사람이라는 회의감 내지는 권태가 짙게 스민 보육교사분의 눈과 처음으로 마주하며 나는 생각했다. 과거의 언젠가는 이 분의 눈에도 새로운 인연을 향한 기대감이 머물렀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을 대신 듣는 등을 바라보며 따라 걷다, 그 아이를 보았다.

“선생님이 가르치실 아이예요.” 메마른 등을 지나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더벅머리를 한 작은 남자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떨어져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고, 책을 좋아해요.” 자기 말을 한다는 걸 알았는지 잠깐 이쪽을 보다 이내 눈길을 거두는 아이의 몸집에선 아홉 살의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안쓰러우리만치 작은 아이였다. 여성 치고 중키가 안 되는 보육교사분의 가슴께에도 키가 미치지 못할 정도였으니. 더벅머리 너머로 고정된 내 시선의 사각에서, 보육선생님은 길지 않은 문장들로 아이를 설명했다. 애가 붙임성은 없어요. 밥도 잘 안 먹고요. 책을 많이 읽는데도 공부를 못 해요. 그래도 우리 애들 중에선 제일 똑똑한 편이에요. 선생님이 잘만 가르치시면 남들만큼은 할 거예요. 보육원 아이들 대부분이 소위 학습부진아동이라는 걸 안 건, 그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몇 달이 더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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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에서 잠시 기다리니 아이가 들어왔다. T와 그렇게 처음 마주했다. 거리를 두고 보던 것보다 더 작고 말라 보였다. 안녕, 나는 국어를 가르칠 거야. 책 좋아한다면서? 뭐 제일 재미있게 읽었어? 팽팽한 침묵을 덮기엔 어설프기 그지없는 말들을 건네며 나는 이내 초조해졌다. T는 답하고 싶은 말에만 고개를 가끔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처음 한 달이 흘렀다. 국어책을 펼칠 때마다 싫은 티를 잔뜩 내며 온몸을 뒤트는 탓에 교재를 바탕으로 한 교습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처음 만난 날 T가 서성였던 보육원 거실의 작은 서가로 갔다. 책들의 면면을 보니 취학아동보단 유치원생에게 좀 더 적합해보일 어린이 동화들이었다. 개중에서도 얇은 축에 드는 것들을 몇 권 뽑았다. “T야, 오늘부턴 이거 읽으면서 얘기나 하자.”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T가 가장 좋아한 책은 <행복한 왕자>였다. 알고 보니 처음 만난 날 펼쳐든 책이 그거였다고, 좀 더 지나서 T는 넌지시 내게 알려주었다. 그 책을 이야기할 때의 T는 정말로 다른 아이 같았다. 대부분 내 목소리로 채워진 1시간이었지만, 그 책이 우리의 화두에 오르면 T의 언어들이 내 말 사이사이에 겹치곤 했다. T는 그 책의 왕자 동상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왕자는 다 주잖아요, 다이아몬드 눈까지 빼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그런데도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제비 같은 좋은 친구랑 하늘나라에도 같이 가고, 나도 그렇게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는 줄 게 없어서 친구가 없어요, 선생님도 나를 안 좋아해요, 줄 게 없어가지고 그런가 봐요, 나는 선생님 좋은데….

처음 T의 긴 이야기를 들은 날, 기숙사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그 깊이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채 열 살도 안 된 T가 끌어안아왔을 너무 버거운 상처들을 생각했다. 며칠간은 T의 말을 곱씹으며 울다가, 문득 나의 그맘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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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열 살이었다. 3월 첫날, 3학년 우리 교실로 들어오시던 담임 선생님의 첫인상은 따뜻했다. 큰이모와 작은할머니의 경계 즈음에 있는 연세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단지 그즈음의 시간대를 건너는 정제된 인생 특유의 안정적인 온기가 자연히 그분에게 스몄을 뿐인 게 아닌가 싶다. 새삼 돌이켜보면 어린 내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은 분인 것도 같다.

선생님께는 매일 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었다는 반찬이며 녹즙을 갖다 주던 아이가 있었다. 그애는 다른 반 선생님의 자녀였던 자신의 친구와 함께 우리 반에서 선생님의 절대적 편애의 대상이었다. 교내의 모든 상과 중요한 대회가 두 아이에게 돌아갔다. 선생님의 맹목적인 총애에 다른 아이들이 들어갈 틈은 없어보였다.

열 살의 나는 편애란 게 어떤 건지 몰랐다. 아마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숙제를 하며 한 장이 넘는 일기를 매일같이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칭찬은 늘 두 아이의 몫이었다. 선생님이 해 주시는 따뜻한 말씀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싶었지만, 내 노력들은 선생님의 무관심이 축조한 견고한 성에 부딪혀 번번이 산산조각이 났다. 어떤 사랑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편애란 그런 성격을 다분히 지닌 사랑임을 알 나이가 아니었다. 그저 나도 저 애처럼 선생님께 뭘 드리면 예쁨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회사를 다녀서 저렇게 만들어줄 수 없으니 나라도 뭘 만들까, 열 살이란 그 정도의 생각이 다만 최선일 뿐인 나이였다.

‘촌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선생님께 바치는 감사와 예의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던 선물 혹은 그 이상의 것들, 으레 행하는 답례라며 때때로 따랐던 편애와 그 너머의 무언가들…. 그나마 촌지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다뤄지던 그해, 나는 T의 말들을 떠올리며 나의 열 살을 곱씹었다. 되씹을수록 아프고 쓴맛밖에 나지 않는 기억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대학에 들어갈 즈음,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오신 선생님의 이런저런 인사를 무미건조하게 듣던 걸 떠올렸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라고 T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바로 다음 주에 T를 보고 얘기했다. 네가 행복한 왕자를 읽고 느낀 걸 일기에 쓰자고. 선생님이 너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말을 T에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단지 너를 몰랐을 뿐이라고, 세상은 분명 달라졌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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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 한 달간 휴가를 신청하고 본가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열어놓은 창으로 피서객들의 여유로운 함성이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들던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요즘 T가 일기를 정말 열심히 써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근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보육선생님의 개인적인 연락을 받은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처럼 날것의 기쁨을 표출하는 그분을 대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T네 담임 선생님이 T가 글을 너무 잘 쓴다고, 본인이 T의 재능을 너무 몰라봤다고 미안하다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이 T 칭찬을 어찌나 많이 하시는지 몰라요. T가 쓰는 책 일기를 항상 반 아이들에게 들려준다고 하시네요.” 세상이 바뀌었구나. 정말로 다행이다. 긴 통화에 휴대폰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보육선생님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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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개강하자마자 본 T는 아예 다른 아이가 돼 있었다. 그 나이엔 정말로 어울리지 않았던 굳은 얼굴이 애정과 관심의 온기에 잔뜩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불과 한 달 새 이렇게나 바뀔 수 있다니, 아이에게 사랑의 힘이란 얼마나 큰 것일까 생각했다. T는 내내 자기자랑과 함께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우리 선생님이 내가 쓴 일기를 엄청 좋아해요. 내가 일기 발표하면 애들이 막 박수도 쳐 줘요. 나 친구도 생겼어요. 선생님이 나한테 백일장이란 것도 나가래요. 상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대요.

그 후 나는 4년 더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새 T가 공부를 곧잘 하는 우등생이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글 실력만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이로 날로 성장했다. 교내 글짓기 대회의 웬만한 상은 T의 차지였다. 고학년으로 접어들고선 교외 대회에서도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T를 가르치던 해, 아이는 커서 ‘선생님 겸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린다, 너는 꼭 해낼 수 있을 거야. 어느덧 내 코끝까지 자란 T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을 다해 T에게 건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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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으로 가던 지하철 환승음악과 똑 닮은 이곳 지하철의 환승 안내방송을 들으며 나는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망각의 심해를 맹렬히 튀어오르는 그곳을 떠올리곤 한다. 부촌 한 편을 아슬아슬하게 딛어선 듯 사뭇 달랐던 어느 동네를, 이질적인 시공간을 조용히 견디던 그 보육원 건물을. T가 국문과에 진학했다는 연락을 받은 게 2년 전이다. 이런저런 글들을 쓰며 자신의 꿈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을, 이제는 청년이 된 T를 이따금 생각하며 되새긴다. 그 아이를 날아오르게 한 날개가 되어준 것을. 있는 그대로의 인정, 그 어떤 편견도 편애도 없는 정정당당한 애정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의외로 지켜지기 힘든 그것이, 아이를 바꾸었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이 작은 ‘기본’들이 모여 세상이 바뀌어 왔고, 더 바뀌어갈 것임을. 낯선 어깨들이 밭게 모인 지하철 차창을 보며, 나는 또 그렇게 입을 꾹 다물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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