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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오랜만에 읽는 그 시절의 책에서 그 시간을 누볐던 나와 만나는 요즘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색채를 지녔고, 어떤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었을까. 수많은 찰나들을 건너며 나 역시 시간의 이런저런 틈새에 맞추며 바뀌어왔지만, 그렇게도 다양한 나의 모습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나 답게’ 느껴지는 건 역시 그때의 나다. 학교 도서관 2-3층 서고를 오가며 읽을 책을 고민하던, 그러다 이따금은 남산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 하버마스건 플루서건 닥치는 대로 빌려오곤 했던- 출퇴근길에 들추는 지그문트 바우만으로, 매 장의 귀퉁이를 접어내리며 문득 ‘살아 있다’는 감각에 몸서리쳐질 만큼 감사한 순간들. 2018. 7. 21.
나의 어떤 면모를 너는 요 며칠 줄곧 그곳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솔직히 고민했다. 그래도 맞는 것 같다. 후회하지는 않을 거다. 아닌 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렇게까지 나를 외면한 곳을, 단지 ‘남아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으니. 게다가 그곳이라면 더더욱. 자기합리화래도 할 말은 없다. 그저 이젠 내가 후련하면 됐다는 생각 뿐이다. 덕분에 늘어난 휴일의 시간, 늘어지게 책이나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읽던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이번 작품은 유독 독백이 많다. 철저하게 자의식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이 한 명 한 명의 등장인물이 진정 ‘객관적인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인지 점진적으로 의심의 폭을 넓히게 된다. 오로지 주관적이며 심지어는 왜곡까지 가해진 .. 2018. 7. 1.
나란히 붙어 있는 어떤 이름들에서 이제 더는 급작스런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게 됐다. 또 다른 이름으로 잊게 된 것도 아니고, 느닷없는 사건(이라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따뜻한)으로 지워지게 된 건 더더욱 아닌데. 옅어졌다. 내 시간들을 꾹꾹 누르고 때로는 맹렬히 할퀴기도 했던 이들이니 흔적이야 남았지만, 이제는 그 이름들을 보아도 그저 그런 자욱 정도로 그치는 느낌이다.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 쑤욱 다시 차오르는 살갗처럼. 하필 이렇게 붙냐, 보면서 조금 웃었다. 이름순 나이순 사건발생순 그 모든 순서를 정확히 지키며 위아래 사이 좋게 배열된 어느 이름들. 이제 더는 내 심장이 쿵쿵 부딪어 오지 않는 이름들. 울대까지 올라오는 진동에 눈길을 피하게 만들었던,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대면할 수 있게 된 자모의 결합. .. 2018. 6. 6.
이른 잠의 직전에 뺨에 살짝 열기가 돈다. 감기가 오려나, 몸살 같은 것일까. 연휴 내내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출퇴근길에 읽는 통에 생각보다 진도를 못 뺐던 를 쭉 읽었다. 노교수 특유의 세월이 배인 시각에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역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헤밍웨이 전문가 다웠다. 헤밍웨이의 장편은 다 읽은, 나름 헤밍웨이의 충실한 독자라 생각했음에도 해설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단편에 그만 낯이 설고 말았다. 이렇게 헤밍웨이 단편선마저 사 버리는 걸까, 생각했다. 딱 하나 남은 ‘빈틈’이 못 견디게 신경쓰일 때가 있는데, 나는 유독 작가의 못 읽은 작품에 대해 그런 성향이 강해진다. 헤밍웨이의 단편, 한강의 근작 같은 것들. 한강의 작품은 여차 하면 또 상을 탈 것 같으니, 얼른.. 2018. 5. 6.
이토록 감사하여라 좋은 분 아래서 많은 것을 배우며 일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 나날이다. 아랫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나서주실 수 있는 분을 상사로 모시게 된 만큼 감격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음에 마음을 다해 감사한 시간들. 가장 궁지에 몰릴 때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시고, 가만히 위로를 건네주시는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순간들. 여전히 미숙, 아니 때로는 미욱하기까지 한 나이지만 이렇게나마 그분들께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음에 온 마음으로 감사하고픈 찰나들. 용기는 역시나 힘이 세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도 천둥벌거숭이같은 나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배운다. 좋은 분들의 용기가 모여 정말 큰 일을 해냈다. 이렇게까지 뿌듯할 수 있다니, 감사하여라, 또 감사하여라. 이른 퇴근을 하며.. 2018. 5. 1.
어떤 국면 ​ 누군가를 새로이 보게 되는 국면이랄까,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이랄까. 전자는 상황에 의해 다시 보게 되는, 이를테면 피동성에 가까운 것이라면 후자는 좀 더 능동적인 데다 ‘그 사람’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어쨌든, 미처 몰랐던 그 사람의 면모가 조금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을 조금은 달리 보게 됐다. 나를 둘러싼 무언가가 조금... 바뀌었다. 2018. 4. 22.
주말아침 출근의 자동기술법 06:56 열차 탑승. 여느때 출근에 비해 조금은 늦었다. 그래도 토요일에 출근하는 회사원 치곤 빠른 편이겠지, 다독임인지 자랑인지 모를 속엣말을 읊조리며 차창에 비친 드문한 얼굴들을 본다. 요맘때면 조금씩 붐비곤 했던 지하철(이라 쓰고 자꾸만 ‘도시철도’라는 글자에 미련을 두게 되는 건 직업병인 듯)도 오늘은 영 한산하다. 고즈넉한 여유랄까, 넉넉한 아침이 늘어진 이 땅 밑의 공간을 열심히 지나고 있는 나의 주말 출근길. 주말 ‘이 시각’에 회사를 나가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괜찮다. 외려 집에서 늘어지다 꾸역꾸역 오후 즈음 되어 나가던 길보다 이 편이 더 좋은 듯도 하고. 일이 일찍 끝나면 교보에 들러 신간도 좀 보고, 미세먼지가 좀 걷히면 신나게 달려야지. 키마 카길이 쓴 을 읽고 있다. 가볍게 ..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