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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 - "Che gelida manina(푸치니 <라 보엠> 중)",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중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 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 연주. 카라얀과 협연한 공연 중에선 파바로티 단독 버전으로 올라온 게 없다. 아쉬운 딴에나마 녹음된 버전으로. ** 이 곡에 대한 첫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학교 2학년 무렵의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10여 년도 더 된 기억이다. 파바로티가 그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명세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때의 내게는 좀 더 묵직한 진파를 가지고 전해진 소식이었다. 우리 아빠가 워낙에 파바로티를 좋아했다. 1970년대 중반, 그러니까 아빠의 청춘 가운데 어느 한때,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파바로티가 내한을 왔던 적이 있었단다. 파바로티의 등장 전이라 하면 일왕이.. 2019. 1. 20.
다만, 충실하기 다만 순간에 충실했을 뿐인데- 라는, 어느 노래 가사였던가 누군가의 합격수기였던가,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억 속 어떤 이의 말이 요즘처럼 와 닿는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나름대로 벼르던 책을 손에 넣고서, 잠시라도 눈을 떼야만 하는 순간이 아까워 걸으면서도 낱장을 넘기던 그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게걸스레 흡입하며 생각했다.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힘인지. 책을 손에 넣자마자 문구점에서 까만 펜 두 자루를 샀다. 어디에 무엇을 조금 더 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더 충실하게 나의 순간들을 끌어안기 위해. 나의 시간들을 마냥 흘러보내지 않기 위해. 이 시간들을 언어들로 조금이나마 새겨두기 위해. 언젠가 나의 나날들을 뒤적일 때,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그 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 2019. 1. 15.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것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이 있다. 이를테면 진심에서 우러나온 너털웃음 같은 것. 웃음의 교집합에 딱 들어맞는 무언가를 예상치 못하게 접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함성 같은 경쾌한 웃음, 짓궂게도 해맑은 타인의 웃음- 그런 웃음을 마주할 때면 기쁨의 여러 가지 색채와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떤 이의 너털웃음 앞에선 따라서 깔깔대고, 어떤 이의 그것 앞에선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는 뿌듯함에 슬쩍 미소도 짓지만, 당신이 터뜨리는 그 웃음과 스치는 순간엔 그만 모든 경계를 놓아버리고 만다. 사랑스러운 당신의 너털웃음을 본 나는 당신 앞에서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나를 못 견디게 하는, 더없이 무방비하게 만들어버리는, 누구에게나 사랑스럽지.. 2019. 1. 14.
어쩌다 돼 버린 아침 인생을 곱씹어 보는 점심. 2018. 12. 13.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매일 듣는 라디오에서 유난히 좋은 음악이 나오는 날은 정말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재즈와 올드팝과 영화 대사가 오가는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문득 보니, 몰랐는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침의 라디오는, 특히 오늘의 라디오는 정말로 좋구나. 얼굴들로 빽빽한 지하철에서조차 나도 몰래 몸을 살랑이게 되는, 이른 출장길의 아침. 2018. 11. 6.
어떤 종류의 정 그렇게 꿈꾸면서도 영 정을 붙이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의 극히 일부일 뿐인 무언가만을 좇으며 그 꿈을 그렇게나 갈망했다. 잡히지 않는 꿈에 울고불며 왜 내겐 허락되지 않는 건지 원망하면서도 정작 “좋아한다”는 말 앞에선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서성일 뿐이었던, 내 20대의 절반 가까이를 물들였던 꿈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꿈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 꿈에 이렇게나 정이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나 치이고 때로는 배우는 시간에 푹 절여져야만이 다가오는 꿈이었던가. 이 시간 덕에 이 꿈에 이렇게나 정이 들어버릴 수 있다면, 이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구나 싶은 날들. 이따금 다가오는 서러움을 흘려보내기만 한다면, 나의 꿈이 주는 섬세한 언어들에 마음이 놓이는 나날들. 언제나 좋다. 내일도.. 2018. 11. 5.
떨치기 버거워 사건은 머물러 있다. 사건에 열기를 불어넣는 건 순전히 나의 해석이다. 사건을 모아 이야기를 만드는 이, 이야기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프리즘을 갖다대는 사람은 바로 나. 모든 것이 나,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마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이 자꾸만 사건을 끌어오고 긴 꼬리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사건과 감정을 점착시켜 버리는 마음의 점성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런 날. 마음이 너무 커져서, 이야기에 자꾸만 그림자가 생긴다. 기어이 그늘이 지고야 마는 나의 어떤 이야기들. 나는 여전히 담백하지가 못하구나. 불현듯 질척이는 사건의 잔해들에, 그만 발걸음이 눅눅해지고 마는 어느 가을 저녁. 곱씹는 모든 것들에 습기가 어린다. 2018.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