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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순간

그 아이네 집

by 디어샬럿 2019. 1. 27.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 속 어떤 장면. 그 장면은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의 집에 내가 무작정 졸래졸래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집에서 우리는 너덧 살 터울의 그 아이 동생과 함께 어색한 소꿉놀이를 했다. 가구의 위치와 벽지 색깔까지 기억날 정도로 모든 것이 제법 또렷하게 남아 있는 집. 어떤 기억은 이렇게, 오직 단 몇 컷의 단상만으로 강렬하고 맹렬히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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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니던 때 중 정말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이 딱 두 번 있다. 열 살 때와 열두 살 때다. 학교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일 그 나이에, 교실의 모든 것은 내겐 거대한 덫과 같아 보였다. 오늘도 부디 하루가 후딱 끝나 있기를 바라며 교실문을 열기 전 매일 심호흡을 했다. 나는 그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개미지옥을 떠올렸다. 맞벌이로 매번 늦으셨던 부모님을 기다리며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 7시쯤에 보곤 했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속 장면이었다. 유독 그 프로그램에선 개미지옥 파리지옥과 같은 식물들이 자주 나왔다. 화려한 외양과 향긋한 냄새로 자신의 안으로 곤충을 유인하고는, 그 어여쁜 잎을 순식간에 다물고 끈적한 점액을 토하며 자신의 ‘먹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던 존재.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실은 개미지옥처럼 아름답지도 향긋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회벽의 동굴지옥에 가까웠다고 해야 좋을까.

그 지옥으로 들어서는 매 순간이 고역이었다. 교실의 모든 것이 투명 점액을 뿜으며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유달리 아이들에 관심이 없는 분이셨고, 당시 우리반엔 왕따 주동자로 전교에서도 유명한 여자애 R이 있었다. R은 같은 반 여자애들을 돌아가면서 따돌렸다. 기본이 2주, 아무리 기가 센 애들도 3주를 넘기지 못하고 R의 따돌림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애는 그런 식으로 언제 튀어오를지 모를 또래들을 통제했고, 그만큼 지독하게 사람을 따돌리는 방법을 알았다. 아이들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선생님 아래서 R은 절대권력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군림했다. R의 눈엣가시가 되지 않으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했다. 그 반엔 항상 기묘한 긴장과 기분 나쁜 곁눈질이 허공을 맴돌았다.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가해자가 되었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서로의 뒷담화를 밀고해 R의 측근이 되는 길을 택했다.

내가 유일하게 하던 사교육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었는데, 심지어 그 학원조차 학교와 너무 가까웠다. 방과 후 학원에 가면 학교에서 보던 애들을 또 봐야 했다. 개중엔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도 몇 명 있었다. 나는 학교 바깥에서까지 그애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학원문을 열기 직전엔 솟아오르는 토악질을 꾹꾹 눌러야 했다. 반이 바뀌기까진 너무 많은 날들이 남아 있었고, 나는 매일매일 축적된 점액에 온몸이 굳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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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매의 홑옷을 입었으니 가을께였던 것 같다. 그날따라 학원 가는 게 너무 싫었지만, 그렇다고 빠질 용기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눈에 띄게 숫기도 없고 낯가림이 심했으며 눈치도 많이 보던 아이였다. 그저 잠깐 시간을 때우고 조금 늦게 학원에 가야겠단 생각으로 공을 차는 남자애 몇몇 뿐인 넓은 운동장 가장자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그 아이를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그때로부턴 3년 전에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가 막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그 아이에게 갔다. 그 아이, 그러니까 S는 나만큼이나 낯가림이 심한 애였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나는 멀뚱히 서 있는 S에게 - 그때의 내게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 물었다. 내 오늘 느그 집에서 놀아도 되나? S는 속마음을 읽을 수 없는 잔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애들이 학교 주변 10분 거리 내에 살던 것과 달리, S의 집은 큰길 하나를 건넌 후 31번 버스 종점 너머로 더 걸어가야 했다. 초등학생의 등하굣길 치고는 꽤 먼 곳이었다. 근 20분이나 걸었을까. 그 시절 연식이 꽤 된 아파트의 상징과도 같았던, 상아색으로 칠한 낮은 복도식 아파트 안으로 S는 발걸음을 옮기며 내게 손짓을 했다.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S의 집은 꼭대기인 5층에서도 제일 가장자리였다. 대문을 열고 현관에 서니 거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현관 좌측엔 크리스털 색의 냉장고가 서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싱크대가 이어졌다. 거실과 부엌의 애매한 경계 즈음에서 S의 동생 같은 아이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홀로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S의 동생은 S만큼이나 말수가 적었던 것 같다.

S는 나를 거실 안쪽 가장 밝은 자리로 안내했다. 그 후 그애는 출입문 우측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거실과 면한 문을 열어 뚜껑이 꽉 닫힌 큼직한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나왔다. 우리 때까지만 해도 비싼 축이었던 레고를 대신한 옥스포드를 비롯해 미미 쥬쥬 등 이런저런 장난감들이 통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옥스포드 블럭으로 S는 학교를 나는 집을 만들었고, 그새 S의 동생이 합류함으로써 역동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엄마놀이 - 이상하게 우리 동네에선 소꿉놀이를 ‘엄마놀이’라 불렀다 - 가 시작됐다.

서로의 미미 쥬쥬 인형으로 엄마놀이와 학교놀이를 넘나들며 몰입하던 때, S가 장난감을 가지고 나왔던 방문이 열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조용한 공간에 우리 말고 누가 있을 거란 생각을 미처 못 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 하며 당황해 하던 나를 보시고 S의 어머니는 “친구 데려왔네”라며 답례를 갈음하셨다. 우리 셋을 가로질러 부엌 공간으로 향하신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어 델몬트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 숭늉을 내 오셨다. 냉장고는 유난히 밝은 불빛을 뿜어댔고, 보리차는 이곳의 온도와 습도를 중화해 줄 기분 좋은 냉기와 함께 각자의 손으로 옮겨졌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냉장고 문을 여시며 식재료를 꺼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집 냉장고의 밝은 불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어머니는 싱크대에서 칼질을 시작하셨고, 보리차를 아껴 마시며 우리는 엄마놀이를 잠시 쉬었다. 또 한 번 방문이 열렸다. S의 아버지였다. 이번엔 까무러치게 놀랐다. 무려 가족 모두가 계시는 이 공간에 허락도 없이 찾아온 꼴이라니. 그 나이에도 나의 무례함에 얼굴이 타오를 듯 달아올랐다. S의 아버지는 부엌께로 가 냉장고 문을 여셨고, 이제는 기억 나지 않는 어떤 음식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셨다. 어머니는 내일 해 줄테니 오늘은 좀 참아보라셨고, 아버지는 아마도 그 말을 거부하셨던 듯하다. 곧 두 분은 언성을 높이며 부부싸움을 하셨다. 우리 셋은 날선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체 몇 분 더 엄마놀이를 했다. 입을 쩍 벌린 냉장고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또 다른 점액이 되어 그 공간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어머니는 저녁식사를 권하셨지만 나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사양했다. S는 학교 앞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여전히 우리는 말이 없었고, 내가 이젠 나 혼자 가도 된다고 했을 때 S는 조금 머뭇거리다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싸워서 놀랬제? 미안...” 그 나이대의 수줍음 많은 애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그 말의 무게는 내게 남달랐다. 그건 그애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누구도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저 낯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사과라니. S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했고, 그 말을 하려 어떤 용기를 냈는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쫓기듯 집으로 왔다.

어느덧 7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집에선 난리가 났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아빠, 내 피아노 잠깐만 쉬면 안 되나. 아빠는 잠시 그리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래, 잠시 쉬고, 다니고 싶을 때 다시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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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적어도 방과 후까지 교실의 얼굴들을 마주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 R은 그해 겨울, 나와 몇몇을 제외한 여자애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네들은 R이 한 것 이상으로 악랄하고 지독하게 그애를 따돌렸다. 계절은 한 번 더 흘렀고, 새 학년이 돼 반이 바뀐 나는 소원대로 5학년 때 반 아이들과는 거의 헤어졌다. 피아노 학원도 다시 다녔다. S와는 그 이후로 복도에서 만나면 어색하고도 조용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도 조용했던 S는 중학교에 들어가자 소위 ‘노는 애들’이라 불리는 무리의 중심격이 됐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진 같은 건 아니었지만, 그토록 급격하게 바뀐 그애는 왠지 그 집 냉장고의 느닷없던 불빛만큼이나 내가 알던 그애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음에도, 어느 순간부턴 복도에서 만나도 어색한 눈빛만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S가 그 동네와는 제법 떨어진 여상에 진학하고부턴 길에서조차 마주친 적이 없다.

가끔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S를 붙잡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날 너무 고마웠다고. 네가 최선을 다했던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그건 네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다고. 오히려 갑자기 찾아간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혹시 그날 나의 행동이 너를 상처 입혔다면, 정말로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내가 너무 미안했는데, 그 말을 하기엔 너만큼 용기가 없어 그만 그렇게 된 거라고. 그리고 어머니가 주신 보리차, 내가 세상에서 마신 보리차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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