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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생경함 우연히 본 라디오스타에서 마이클잭슨 노래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젊은 마이클의 경쾌한 음성과 함께 터지는 MC들의 탄성이, 반가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를 좋아하게 된 후의 절반 이상이 음지에서의 시간이었던 때문일 거다. 마이클잭슨 좋단 말을 누구에게도 섣불리 할 수 없었던. 내가 그의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때는 하필 그를 둘러싼 두 번째 송사로 온통 시끄러울 무렵이었다.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추측들이 횟빛 의심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돌이켜보면 필요 이상으로 모두가 잔인했던 시절. 엄청난 인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돌변한 조롱과 갖은 비난 속에서 그의 음악을 좋아해도 되는지조차 고민이 됐다. 언젠가 책상에 올려둔 그의 앨범을 보곤 누구 것인지 묻던 친구의 얼굴에서, 마이.. 2014. 7. 24.
Will you be there?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다가 모두 지워버렸다. Will You Be There, 이 한 곡만으로도 하고픈 말이 넘쳐흐를 것 같았다. 벅차리만치 좋아하는 노래라 당장 열변이라도 쏟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슬아슬했던 때마다 지탱해준 곡이라 구구절절한 헌사라도 기꺼이 바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쓰려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히 이런저런 말로 재단하는 게 가당키나 한 곡인가 싶다. 꽤나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 노래에 대한 인상을 어떤 말로 단정해얄지. 7분 40여 초를 가득 채우는 음들과 수많은 진심들을 과연 어떤 언어로 옭을 수 있을까. 단순히 환희 내지는 희열이란 말로 얽어매기엔 곡이 품은 세계가 너무나 방대하고 변화무쌍하다. 어제 떠올랐던 색채들이 오늘 또 다른 장면으로 대.. 2014. 7. 24.
작은 감탄 아빠께서 양파를 잔뜩 가져오셨다. 옹글종글 알이 작은 녀석들이다. 한 손에 쥐어도 쏙 들어와 자취를 감춘다. 지인의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길러졌단다. 어쩐지... 요즘은 마트에 가면 감자만한 양파들이 여 보란 듯 기세 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녀석들은 성긴 망을 우격다짐으로 당장이라도 비집고 나올 듯한 태세다. 웬만한 채소는 옆에 붙여놓으면 크기에서 밀리는 모양새가 사뭇 호전적이기까지 하다. 농약도 농약이지만, 대개가 GMO 식품이어서 요리할 때마다 영 께름칙하기도 하다. 채소마저도 크고 예뻐야 소비자의 간택을 받는 시대. 인간 욕심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모처럼의 아담한 양파는 그래서 기쁘다. 오랜만에 작은 접시에도 쏙 들어오는 양파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자그마한 이대로도 이렇게나 예쁜데. 자연.. 2014. 7. 24.
호언장담의 유통기한 특별할 것 없는 휴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곧 비를 흩뿌릴 하늘을 아슬아슬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쏟아졌다. 여차 했으면 흠씬 두들겨맞은 생쥐 꼴이 될 뻔했다. 혹시나 싶어 켠 TV에선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연장전이 한창이었다. 어젯밤 동생은 코스타리카의 승리에 내기를 걸었다. 네덜란드의 낙승을 장담했던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바로도 나바로지만, 다리에 쥐가 나도록 공을 쫓아가는 이름 모를 코스타리카 선수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체력이 떨어져 잔디에 푹푹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달리고 또 달리던 10명의 선수들. 정말이지 채널을 돌리기마저 미안한 투혼이었다. 호기롭게 내뱉은 말들이 무안해졌다. 비틀즈의 페퍼상사와 애비로드 앨범.. 2014. 7. 24.
Tomorrow Never Knows 같은 제목 다른 노래. 비틀즈의 Tomorrow Never Knows를 듣다 불현듯 생각났다. 타이틀만 같을 뿐이지, 가능성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전혀 다른 곡이다. 원 타이틀의 곡은 비틀즈의 1966년작 Revolver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비틀즈의 전-후기를 나누는 주요한 곡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이 곡을 쓸 무렵의 존 레논은 한창 LSD에 빠져 있었다. 그때의 환각 경험이 철학적으로 여과 없이 담긴 게 바로 이 노래. 요즘은 마약으로 분류된 지 오래지만, LSD는 1940~50년대까지만 해도 정신병리학에서 치료 목적으로 환자에게 투입한 사례가 있었다고. 특히 60년대엔 인간 내면의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마법의 약'이라 하여 지식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유통됐다 한다. 이론적으로 이를 증명하려는 움.. 2014. 7. 24.
시간을 달리는 편지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이 편지를 보냈다. 개구진 듯 맑은 눈이 인상적인 말리 소년 카림과, 벌써부터 미인의 기미가 보이는 네팔 소녀 루마다. 단체에서 조율한 건지 성별이 다른 두 아이와 결연이 됐다. 신기하게도 동갑내기. 사는 지역은 전혀 다르지만 소식지가 따로 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 편지가 단체에서 먼저 취합돼 후원자에게 보내지는 탓일 터다. 카림과는 3년, 루마와는 2년 반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어설픈 영어로 주고받은 편지도 어느덧 예닐곱 통. 또래임에도 상반된 성격이 편지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같은 아이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다. 아마 남녀의 차이라는 부분도 있을 거다. 느낌이 완전히 다른 편지가 같은 우편에 묶여 올 때마다, 명도도 채도도 정반대인 두 색이 기묘하.. 2014. 7. 24.
살리에리와 나를 위한 변명 안부인사를 건네받으면 기분이 좋다. 나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타인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설령 대화를 위한 인사래도, 그건 그 나름대로 고맙다. "안녕"보다 한결 보드라워 당장이라도 포근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럭저럭 지낸답니다. 어찌 지내세요? 되묻다보면 나 역시 그가 새삼 궁금하다. 정말 잘 지냈는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별일은 없는지. 하지만 달갑잖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단 게 한눈에도 보이는, 혹은 일장연설을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허울뿐인 안부인사 같은 것들. 적잖이 받아왔어도 역시 불편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의 신상을 둘러싼 이야깃거리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땐 더 그렇다. 어딘지 날이 선 듯도 같고, 구설거리를 찾으려는 것도 같은. 받는 이의 곤란함을 의도적으로 ..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