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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시인의 연애편지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번이 내 시골 있던 때입니다. 이른 말 허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이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2014. 7. 28.
정지용의 서글픈 피리들 일본의 피리라도 빌려서 연습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피리꾼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도 철학도 민중도 국제문제도 피리로 불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당파와 군집, 선언과 결사의 시단은 무섭습니다. 피리. 피리. 피리꾼은 어디서나 언제나 있는 법이지요. - 편집부에 부친 편지에서, 정지용 --- [한겨레] '향수' 시인 정지용 새 작품 발굴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48750.html?_fr=sr1 채플린을 흉내내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다. 모두가 와르르 웃었다.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가지 않아 엉덩이가 허전해졌다. 채플린은 싫어! 화려한 춤이야말로 슬픈 체념. 채플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음침한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 아래 서성이며 진흙과 장.. 2014. 7. 28.
어쩌면 주제 넘는 고민 아직은 아픈 손가락인가 보다. 놓친 본방송을 기어이 찾아보고야 말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선지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자기반성과 변화는 필요한 때니까. 다만 방송이 꿈꾸는 '언론의 민낯'엔 아무래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언론의 민낯이 뭐길래? 정의라는 열쇠를 빌려 무단침입을 일삼는 특권의식? 물먹기 싫은 자신은 숨기고 데스크 탓부터 하고보는 위선적인 면죄부? 언론의 민낯이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야말로 이젠 벗어버릴 때 아닌가? 환경과 사람이 그대로인 어느새고 그곳의 민낯이 볼 만했던 적이라도 있었나 싶다. 부쩍, 언론이란 플라톤 류의 이데아가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이런저런 미사와 흠결 없는 이론들로 견고하게 구축됐지만 실존여부는 확인되지 않는 천공의 성. 이데아 세계에 세워진 이 튼튼한 성은 .. 2014. 7. 27.
아무것도 몰라요 모 종편채널에서 리모컨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시선을 고정했다. 조금만 더 보면 달라지겠지, 들을 만한 게 나오겠지. 조금만 더... 그러다 결국 그걸 두 시간이나 꾸역꾸역 다 보고 앉은 못난 인내심(혹은 우유부단)을 탓하고야 말았다. 치뜬 눈만큼 목에도 힘을 잔뜩 넣은 앵커는, 국가비상상황이라도 알리듯 비장한 얼굴로 숨진 교주 장남의 소식을 전했다. 잘 들지도 않아 몇 번이나 쑤시기를 반복해야 하는 녹슨 창처럼 귀를 연신 찔러대는 음성이었다. 의도치 않게 청자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소식이랄 것도 없었다. TV판이자 정치판 타블로이드 한 편 거하게 읽은 느낌이었다. 패널들은 앵커를 사이에 두고 원탁에 모여앉아 덩달아 핏대를 올렸다. 갈수록 쩌렁쩌렁하고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겹치고 엎어지고 잘.. 2014. 7. 26.
Stranger in Hometown 날이 제법 궂다. 머잖아 비를 흩뿌릴 듯하면서도 소식은 없이 바람만 거세다. 이왕 오는 거라면 비만 시원하게 내려주지,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비다운 비를 본 지가 너무 오래다. 성인이 된 후의 어느 때부터 날이 흐리면 기분도 덩달아 엉클어지지만, 가끔 세상이 적당히 축축해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해갈도 해갈이지만, 인간의 바쁜 일상에도 뜬금없는 운치의 기회는 주어져야 할 게 아닌가 하는 열없는 생각이 부쩍 자란다. 누군가는 창밖을 보며 블랙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김치전에 막걸리를 드는 따위의 것들 말이다.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적당한 물기는 필요한 법이다. 왜인지 이 노래가 듣고 싶었다. 비 혹은 잿빛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인 것 같다. 다소 우울한 멜로디와, 답지않게 조금은 처지는 비트의.. 2014. 7. 25.
These Foolish Things Oh, will you never let me be? Oh, will you never set me free? The ties that bound us are still around us There's no escape that I can see And still those little things remain That bring me happiness or pain - A cigarette that bears a lipstick's traces An airline ticket to romantic places And still my heart has wings These foolish things remind me of you A tinkling piano in the next apartment Tho.. 2014. 7. 24.
늦어서 미안해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이해하고 있다. 순전히 타인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것이 되어 있었다.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온전히 내게로 물들이긴 어려웠던 사연들이, 이제야 다가왔다. 모르는 새 방문을 열고 들어와 가슴 한 구석에 비집고 앉은 회백색의 마음들. 이런 뜻이었구나. 이런 심정이었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암호같은 무언(無言)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꽃인 줄도 몰랐던 어느 몸짓처럼, 미세한 감정의 틈에서 울리는 진파를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느낄 수 있게 됐다. 온갖 너울을 고스란히 안고 지냈을 그 시절 그와 그녀의 절박함이 가슴을 아프게 관통한다. 누구 하나라도 가만히 이 진동을 잡아주길, 아니 알아만이라도 주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을까...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