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를 쓰다가 모두 지워버렸다. Will You Be There, 이 한 곡만으로도 하고픈 말이 넘쳐흐를 것 같았다. 벅차리만치 좋아하는 노래라 당장 열변이라도 쏟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슬아슬했던 때마다 지탱해준 곡이라 구구절절한 헌사라도 기꺼이 바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쓰려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히 이런저런 말로 재단하는 게 가당키나 한 곡인가 싶다. 꽤나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 노래에 대한 인상을 어떤 말로 단정해얄지. 7분 40여 초를 가득 채우는 음들과 수많은 진심들을 과연 어떤 언어로 옭을 수 있을까. 단순히 환희 내지는 희열이란 말로 얽어매기엔 곡이 품은 세계가 너무나 방대하고 변화무쌍하다. 어제 떠올랐던 색채들이 오늘 또 다른 장면으로 대체되는 한편으론, 처음 들었을 적 가슴까지 전해지던 묵직한 음감은 아직도 귀 언저리를 맴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새삼스런 감동이 교차한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풍모를 드러내는 미지의 숲 같기도, 혹은 실은 아주 친숙했던 공간 같기도 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잔잔히 퍼진다. 4악장 환희의 송가 중 피날레를 앞두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더욱 낮고 깊은 곳으로 읊조리는 듯 깔리는 경건한 합창 파트―"이들이여, 엎드리지 않겠는가? 창조주를 믿겠는가? 온 세상이여, 별들 뒤의 그를 찾으라. 별들이 지는 곳에 그는 있도다 (Ihr sturzt nieder, Millionen? Ahnest du den Schopfer, Welt? Such' ihn uber'm Sternenzelt! Uber Sternen muss er wohnen)"―가 숨을 돌린 틈. 잠깐의 정적과 함께 가느다란 음성이 이어진다. 까마득한 심해를 딛고 빛 한 줄기를 따라 위태로울 듯 점점 명료하게 퍼지는 목소리. 곧 공명은 사라지고, 너무나 익숙해 눈물이 날 것 같은 키보드 선율로 곡은 시작된다. 물기를 털고 뭍을 디딘 음은 아프리칸 퍼커션 리듬을 따라 광야를 내닫는다. 가스펠 풍의 낮은 합창 리드가 이어진 후, 태초처럼 광활한 세계의 한복판에서 담담히 고백하듯 울리는 마이클잭슨의 노래―
Hold me, like The River Jordan
And I will then say to thee, "You are my friend"
Carry me, like you are my brother
Love me like a mother
Would you be there?
-
Weary, tell me, will you hold me?
When wrong will you scold me?
When lost will you find me?
But they told me
"A man should be faithful and walk when not able and fight till the end"
But I'm only human
-
Everyone's taking control of me
Seems that the world's got a role for me
I'm so confused
Will you show to me?
You’ll be there for me and care enough to bear me
Hold me (Show me)
Lay your head lowly (Hold me)
Softly then boldly
Carry me there (I'm only human)
Lead me (Hold me)
Love me and feed me
Kiss me and free me
I will feel blessed (I'm only human)
Carry (Carry)
Carry me boldly (Carry)
Lift me up slowly
Carry me there (I'm only human)
Save me (Lead me)
Heal me and bathe me (Lift me up, lift me up)
Softly you'll say to me
I will be there (I will be there)
Lift me (Hold me, yeah)
Lift me up slowly
Carry me boldly
Show me you care (I will be there)
Hold me
Lay your head lowly (I get lonely sometimes)
Softly then boldly (I get lonely, yeah yeah)
Carry me there (Carry me there)
Need me
Love me and feed me (Lift me up, hold me up)
Kiss me and free me (Lift me up sometime, up sometime)
I will feel blessed
.
.
.
In our darkest hour, In my deepest despair
Will you still care?
Will you be there?
In my trials and my tribulations, through our doubts and frustrations
In my violence, In my turbulence, through my fear and my confessions
In my anguish and my pain, through my joy and my sorrow
In the promise of another tomorrow
I'll never let you part
For you're always in my heart
눈물의 자기고백으로 이루어진 후반부 내레이션까지의 풀 버전을 처음 들은 때는― 온통 놀랐던 기억 밖에 없다.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구성에 놀라고,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그전까지 들어왔던 Will You Be There가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한 편집본이었단 사실에는 세 번 놀람과 동시에 분노했다. TV건 라디오건 틀기만 하면 이 노래가 나오던 시절에도 한 번도 이렇다 할 감동은 느끼지 못하던 터였다. 환희의 송가도, 놀랍도록 투명한 고해도 모두 잘라버린 3분 39초(너무 화가 나서 아직도 러닝타임을 기억한다!) 짜리 반토막 곡이니 당연했다. 이놈의(!) 라디오에디션이 아니었다면, 모든 소리와 음과 메시지가 살아 숨쉬는 원본이었다면 조금 더 빨리 이 곡의 진가를 알았을 거다. 고등학생 땐 이상하리만치 손이 가지 않았던 Dangerous 앨범에도 어쩌면 일찍 애정을 가졌을 거고, 이 엄청난 앨범을 몇 년이나 지난 뒤에야 듣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스펠 풍이 짙은 소울발라드 넘버로, 4집 댄져러스의 11번 트랙에 실렸다. 여느 그의 곡이 그러하듯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코러스 합창부를 제외한 백그라운드 보컬까지 '당연히' 마이클잭슨 본인이 모두 맡았다. 서두의 베토벤 합창 교향곡은 조지 셀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조지 셀이라는 거장을 만나 한창 명성을 날리던 시기의 레코딩이다. 조지 셀의 베토벤은 5번 운명 교향곡만 들었던지라, 합창 교향곡을 본격적으로 들어보려고 이리저리 뒤져봤는데 음반도 영상도 나오는 게 없다. 운명 교향곡의 기억을 떠올리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선에서 고전과 낭만의 조화를 잘 조율하는 지휘자였다. 개인적으론 9번 교향곡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셀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곡인지 이런저런 추측도 많았다. 팬에게 보내는 노래다, 연인에게 바치는 노래다, 다 아니다 찬송가다 등등. 나로선, 어딘가엔 존재할 거라 누구나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을 '거대한 믿음'에의 송가로 보는 게 제일 적당하지 않나 싶다. 신앙을 가진 이에겐 신이라는 믿음의 대상이 있겠지만, 종교가 없는 나같은 사람에겐 스스로의 인생에 최소한 한 번쯤은 진지하게 보내 볼 자문자답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 필사적으로 붙들고 싶은 어떤 믿음에 대한 답 같은 것.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이 순간만 참으면 숨쉴 날이 오는 건지 따위의 절박한 물음들 말이다.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은 봉착하게 되는 순간이지만, 그에겐 아마도 매일이 이러한 문답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한다. 누구보다 사랑받았던 만큼 누구도 감히 감당치 못할 터무니없는 공격과 과도한 시선에 둘러싸여야 했던 인생이었으니. 절박하고도 외로웠을 마이클잭슨의 심정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음으로만도 애절하게 다가온다. "I'm only human (난 한낱 인간일 뿐인데)"이라는 가사의 반복이 어딘지 모르게 안타깝게 들리는 게 우연은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믿음을 놓지 않겠다는 투의 귀결도 역시 마이클잭슨답다. 본인은 위안을 얻고 싶어 쓴 곡일 테지만, 역으로 이 곡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을 듯하다. 많은 이들이 이 곡에서 진심어린 위로를 느끼는 것도 아마 이 지점이 아닐는지.
어떤 말도 어느 누구도 위안이 되지 못했던 날들. 안고 지내던 불안만큼이나 까만 밤, 조용히 밀려들던 이 거대한 믿음을 향한 서사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그와 한 시대에 태어나 이런 노래로 위로받을 수 있어 정말로 다행이다. 돌아보면 가장 힘든 순간엔 언제나 마이클잭슨이 있었다. 즐길 수 있는 음악은 많아도, 지친 마음을 토닥일 수 있는 진심어린 음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음이나 가사 하나하나마저도 오롯이 진짜였던 그의 음악들은 그래서 경이롭다. 일전에 배철수 씨에게 크게 공감했던 말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어떻게든 마이클잭슨의 영향을 받았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정말로 많은 빚을 졌다. 진심을 다해, 그의 음악에 고맙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92년 댄져러스 투어 중의 Will You Be There. 생전에 그는 투어를 정말 힘들어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도 마이클잭슨은 역시 공연이 제 맛이다. 투어를 하느니 "I'll go through hell"이라 한숨을 푹푹 쉬던 그에겐 너무나 이기적인 감상자의 태도라 정말로 미안해진다... 그만큼 멋진 무대를 꾸리는 사람이 없는 걸 어떡해!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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