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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살리에리와 나를 위한 변명

by 디어샬럿 2014. 7. 24.

 

 

 

  안부인사를 건네받으면 기분이 좋다. 나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타인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설령 대화를 위한 인사래도, 그건 그 나름대로 고맙다. "안녕"보다 한결 보드라워 당장이라도 포근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럭저럭 지낸답니다. 어찌 지내세요? 되묻다보면 나 역시 그가 새삼 궁금하다. 정말 잘 지냈는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별일은 없는지.

  하지만 달갑잖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단 게 한눈에도 보이는, 혹은 일장연설을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허울뿐인 안부인사 같은 것들. 적잖이 받아왔어도 역시 불편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의 신상을 둘러싼 이야깃거리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땐 더 그렇다. 어딘지 날이 선 듯도 같고, 구설거리를 찾으려는 것도 같은. 받는 이의 곤란함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무심한 눈빛과 마주할 때면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대체 뭘 하며 지내니. 뭘 하며 살 생각이니. 어느 답에도 미더워하지 않을 법한 질문들에 둘러싸일 때면, 비등가 물물교환 시장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마저 든다. 이쪽에서 어떤 물건을 제시해도 고개를 내저을 상대와의 응대. 충족되지 못한 대화에서 떨어져 나간 말들이 허공을 맴돌 때면, 마치 나조차도 따라 부유하는 듯한 공허감이 밀려온다.


 

 

 

 

  살리에리의 음악을 듣게 된 건 아주 최근이다. 생각보다 좋아 솔직히 깜짝 놀랐다. 살리에리가 누구인가. 그를 설명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등장한다. 인류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 어려서는 신동이었고 커서는 음악의 역사를 바꾼- 하늘이 내린 재능의 대명사 모차르트. 동시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시때때로 비교 당했고, 후대에 이르러선 손가락질까지 받은 이가 살리에리다.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키워낸 천재 음악가이자 당대 최고의 궁정음악가였음에도, 역사의 암묵적인 합의 속에서 그는 언제나 천재를 모함하는 둔재였다. 기어코는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용어까지 얻었으니, 한 인간으로서 받은 모멸감이 실로 이루 말할 데 없는 수준이다.

 

 

 

 

  대개의 이들에게 살리에리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모습이다. 방탕한 천재의 벽과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평생을 열등감 속에서 자멸한 인물. 음악의 장을 바꿔버린 천재와 한 시대를 산 또 다른 음악가라는 설정은, '질투'라는 인공적 플롯을 가미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다. 예술성이니 뭐니 해도 역시 흥미를 배제할 수 없는 영화에선 그리 묘사될 법도 하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생전에 모차르트를 시기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외려 살리에리는 고고한 인품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모차르트와는 막역한 관계는 아니었을지언정 언제나 그를 정중히 대했고, 공공연히 재능을 칭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의 살리에리는 19세기 낭만주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영웅과 초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칭송했던 시절. 시대의 천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나머지 한 사람에게 둔재이자 악역의 굴레를 지운 것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껄끄러운 관계'로서 그나마 증거랍시고 추측할 수 있는 건 모차르트가 부친 레오폴드에게 보낸 단 한 장의 편지. 살리에리 때문에 자신이 궁정에 입성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마저도 모차르트의 일방적인 이야기일 뿐이니, 살리에리는 항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역사의 역적이 된 셈이다. 별 생각없이 썼음직한 다른 사람의 편지 한 장으로 400년이 넘도록 비열과 열등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삶이라니... 살리에리 입장에선 영문도 모르고 오명을 덮어쓴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억울하지 그지없을 터다.

  전 인류적 천재라는 모차르트만큼은 아니었대도, 그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음악만으로 세간의 칭송을 받았고,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길러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한 음악가의 충실한 인생을 멋대로 재단한 건 어디까지나 타인이었다. 같은 공기를 마시지도 같은 땅을 밟아보지도 않은, 까마득한 후세 사람들이다. 재능의 우열이 도덕적 선악으로 치환되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말이다.

  누구나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다른 이의 인생을 재단할 권리 같은 건 아무에게도 없다. 누군가의 이야깃거리로 전락할 삶 같은 것도 없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고, 나의 오늘이 소중한 만큼 남의 오늘도 소중한 법인데... 무심하게 쿡쿡 찔러 물어오는 안부들 속에서 아주 가끔 지칠 때가 있다. 잘 지낸다는 말론 결코 만족할 것 같지 않은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한, 오늘 같은 날엔 더더욱.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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