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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아무것도 몰라요

by 디어샬럿 2014. 7. 26.

 

 

 

 

  모 종편채널에서 리모컨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시선을 고정했다. 조금만 더 보면 달라지겠지, 들을 만한 게 나오겠지. 조금만 더... 그러다 결국 그걸 두 시간이나 꾸역꾸역 다 보고 앉은 못난 인내심(혹은 우유부단)을 탓하고야 말았다. 치뜬 눈만큼 목에도 힘을 잔뜩 넣은 앵커는, 국가비상상황이라도 알리듯 비장한 얼굴로 숨진 교주 장남의 소식을 전했다. 잘 들지도 않아 몇 번이나 쑤시기를 반복해야 하는 녹슨 창처럼 귀를 연신 찔러대는 음성이었다. 의도치 않게 청자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소식이랄 것도 없었다. TV판이자 정치판 타블로이드 한 편 거하게 읽은 느낌이었다.

 

  패널들은 앵커를 사이에 두고 원탁에 모여앉아 덩달아 핏대를 올렸다. 갈수록 쩌렁쩌렁하고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겹치고 엎어지고 잘리고 꼬리를 물었다. 정치평론가, 변호사, 혹은 어느 대학의 교수라는 지식인의 자부심이 한눈에도 가득한 그들은, 저이가 저 얼굴과 몸으로 어디 나다닐 수나 있었겠느냐는 은근한 비웃음으로 포문을 열었다. 은신 내내 만두만 먹었단 말에 올드보이 실사판이라고 농을 주고받다가, 의외로 마음은 약해보인다며 같잖은 동정도 잠깐 했던 것 같다. 여성 '호위무사'와 6평짜리 오피스텔에 함께 머물렀단 주제에 이르자 곱은 눈을 애써 감추며 시시덕대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혀 가정이 있는 사람끼리 뭐하는 짓이냐고 허공에 호통을 친다. 내팽개쳐진 양쪽 아이들은 무슨 죄냐며 마음에도 없어보이는 걱정에까지 이르는 뻔한 가식은 더 보고 있기도 힘들다. 묘한 기류를 품은 가십과 기다렸단 듯 쏟아내는 노골적인 괄시, 천박한 심각함이 응축될 대로 응축된 공기. 웃음을 애써 참는 모양새가, 분명 방송 끝나고 술 마시면서 입방아로 반죽 천 번은 족히 찧을 태세다. 안주거리로 올려도 곧 듣다 손사래를 칠 이야기들이 정확히 120분간 반복됐다. 말초적 자극을 포장한 위선에 사뭇 속이 울렁거렸다. 화면 왼쪽 위엔 뉴스특보라는 자막이 둘 데 없이 떠 있었다. 당치도 않게 거창한 이름을 쑥스러워하듯.


  교주 장남의 후일담이 희생된 삼백여 귀한 목숨과 뭐가 그리 연관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냉장고 윗칸에 빼곡히 들어찬 허쉬초콜릿드링크와 해당 종교 계열사 생수로도 한 시간 남짓 분석하는 정성이, 하필 사건의 본질과 문제의 원천을 밝히는 데로는 왜 향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건지 교묘하게 또는 철저하게 피해가는지도, 자꾸 불러대니 모른단 말에게 미안하지만 정말로 모르겠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모멸과 냉소, 꾸며낸 진중함과 기를 쓴 침묵으로 이렇게까지 점철된 언론이라니. 진실을 알아야 할 곳에서 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건지도, 정말로 모르겠다. 익히 겪어온 괴리지만 오늘만큼 괴이했던 적이 또 있을까 싶다. 분노와 의문만 뭉게뭉게 부풀어오르는 머리와 쓸데없이 달궈진 귀를 식힐 겸 지상파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거의 다르지 않은 소식을 짐짓 심각한 얼굴로 보도하고 있었다. 전공서적과 노엄 촘스키라도 다시 꺼내 읽어야하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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