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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100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매일 듣는 라디오에서 유난히 좋은 음악이 나오는 날은 정말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재즈와 올드팝과 영화 대사가 오가는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문득 보니, 몰랐는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침의 라디오는, 특히 오늘의 라디오는 정말로 좋구나. 얼굴들로 빽빽한 지하철에서조차 나도 몰래 몸을 살랑이게 되는, 이른 출장길의 아침. 2018. 11. 6.
어떤 종류의 정 그렇게 꿈꾸면서도 영 정을 붙이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의 극히 일부일 뿐인 무언가만을 좇으며 그 꿈을 그렇게나 갈망했다. 잡히지 않는 꿈에 울고불며 왜 내겐 허락되지 않는 건지 원망하면서도 정작 “좋아한다”는 말 앞에선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서성일 뿐이었던, 내 20대의 절반 가까이를 물들였던 꿈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꿈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 꿈에 이렇게나 정이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나 치이고 때로는 배우는 시간에 푹 절여져야만이 다가오는 꿈이었던가. 이 시간 덕에 이 꿈에 이렇게나 정이 들어버릴 수 있다면, 이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구나 싶은 날들. 이따금 다가오는 서러움을 흘려보내기만 한다면, 나의 꿈이 주는 섬세한 언어들에 마음이 놓이는 나날들. 언제나 좋다. 내일도.. 2018. 11. 5.
떨치기 버거워 사건은 머물러 있다. 사건에 열기를 불어넣는 건 순전히 나의 해석이다. 사건을 모아 이야기를 만드는 이, 이야기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프리즘을 갖다대는 사람은 바로 나. 모든 것이 나,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마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이 자꾸만 사건을 끌어오고 긴 꼬리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사건과 감정을 점착시켜 버리는 마음의 점성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런 날. 마음이 너무 커져서, 이야기에 자꾸만 그림자가 생긴다. 기어이 그늘이 지고야 마는 나의 어떤 이야기들. 나는 여전히 담백하지가 못하구나. 불현듯 질척이는 사건의 잔해들에, 그만 발걸음이 눅눅해지고 마는 어느 가을 저녁. 곱씹는 모든 것들에 습기가 어린다. 2018. 10. 1.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오랜만에 읽는 그 시절의 책에서 그 시간을 누볐던 나와 만나는 요즘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색채를 지녔고, 어떤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었을까. 수많은 찰나들을 건너며 나 역시 시간의 이런저런 틈새에 맞추며 바뀌어왔지만, 그렇게도 다양한 나의 모습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나 답게’ 느껴지는 건 역시 그때의 나다. 학교 도서관 2-3층 서고를 오가며 읽을 책을 고민하던, 그러다 이따금은 남산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 하버마스건 플루서건 닥치는 대로 빌려오곤 했던- 출퇴근길에 들추는 지그문트 바우만으로, 매 장의 귀퉁이를 접어내리며 문득 ‘살아 있다’는 감각에 몸서리쳐질 만큼 감사한 순간들. 2018.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