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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이른 잠의 직전에

by 디어샬럿 2018. 5. 6.

뺨에 살짝 열기가 돈다. 감기가 오려나, 몸살 같은 것일까.

연휴 내내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출퇴근길에 읽는 통에 생각보다 진도를 못 뺐던 <헤밍웨이를 위하여>를 쭉 읽었다. 노교수 특유의 세월이 배인 시각에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역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헤밍웨이 전문가 다웠다. 헤밍웨이의 장편은 다 읽은, 나름 헤밍웨이의 충실한 독자라 생각했음에도 해설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단편에 그만 낯이 설고 말았다. 이렇게 헤밍웨이 단편선마저 사 버리는 걸까, 생각했다. 딱 하나 남은 ‘빈틈’이 못 견디게 신경쓰일 때가 있는데, 나는 유독 작가의 못 읽은 작품에 대해 그런 성향이 강해진다. 헤밍웨이의 단편, 한강의 근작 같은 것들. 한강의 작품은 여차 하면 또 상을 탈 것 같으니, 얼른 읽어버려야지. 이렇게 또 두 줄짜리 책장이 늘어나겠구나.

두 번째 책을 위해 책장 앞에서 꽤나 고민했던 것 같다. 불현듯 스치는 것이 있어 골라낸 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재독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책 모퉁이를 접고 공을 들여 읽었다. 하지만 요사이 들어, 웬일인지 다시 들추고 싶어지는 것들이 늘어난다. <자기 앞의 생>도, 말하자면 그런 마음으로 집어든 셈이다. 다시 읽는 이 책은 내게 무엇을 말해줄까. 무엇이, 어떤 양각으로 돋아오를까. 오늘은 익숙한 활자의 발자취를 좇다 스르르 잠이 들려나.


그나저나 내일은 출근이다. 연휴 같지 않은 연휴가 간다. 입사 어언 반 년차, 아직도 내 삶엔 여유가 없다. 좀 나아진 듯 하다가도 언제고 틈을 노리는 조급함의 기습에 이따금 심장이 두근거린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내가 역시나 요령이 없는 걸까. 요새는 자꾸 명상에 관심이 간다. 온전한 적막의 공간에서 오직 나와 간절히 대화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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