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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100

귀향의 밤 부산행 밤 비행기로 돌아왔다. 동서고가로를 피해 신선대 길을 내달리듯 온 덕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적당한 습기와 특유의 짭조름한 바닷내를 머금은 공기. 반사적으로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손끝 발끝의 힘까지 쭈욱 빠져버릴 정도로 온몸이 늘어지는 편안함.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공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노랗고 발간 불빛들 탓인지 하늘은 채 검지 않았다. 점점이 박힌 불빛이 점멸하는 곤빛 밤의 항구가 달리는 차창의 사면을 쫓아왔다. 모처럼의 북항 경치가 반가워서 뜬금없게도 눈물이 났다. 곧 산까지 다닥다닥 이어진 아파트들을 보며, 드디어 부산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미학적 요소라곤 전혀 없는 성냥갑 산복주택들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이야. 이게 사람 사는 집이지! 하고, 말도 안 되는 .. 2014. 7. 24.
능소화는 잘못없다 [연합뉴스] "능소화 꽃가루가 실명 초래?"... 유해성 논란 : http://bit.ly/1r0TIhg -- 그 무렵 그는 곧잘 능소화를 타고 이층집 베란다로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창문은 검고 깊은 심연이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심연에 도달하지 못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전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심연에 도달하지 못한 미진한 느낌은 쾌감인 동시에 공포감이기도 했다. 현금의 창은 꿈속에서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심연이었고, 현실에서는 이 세상 비밀을 다 삼켜버린 것처럼 깊고 은밀해서 그는 울고 싶도록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마침내 사춘기였다. - 박완서, .. 2014. 7. 24.
저녁 설거지 단상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보통 6시 즈음이지만 가족들이 영 늦으면 8시가 넘기도 한다. 에라 오늘은 저녁 굶는다 생각하고 안 먹으면 되는데, 다 같이 먹고 있는 밥상에서 혼자 쏙 빠지기가 그래서 ― 라는 건 솔직히 핑계다. 맛있게들 먹는 양을 보면 혀밑서부터 침이 고인다. 내 손을 거친 요리들의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국이나 찌개가 너무 짜진 않은지, 나물 간은 삼삼한지, 조림 간은 잘 배었는지... 딱 한 숟갈만, 진짜 맛만 보는 거야. 자기합리화로 시작된 수저질은 결국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끝이 난다. ​ 오늘은 늦은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양파를 곁들인 김치찌개도 맛있었고, 양파와 볶은 애호박나물도 간이 잘 들었다. 햄에도 양파를 넣어 조려 구웠고 참치에도 다진 양파를 섞어 부쳤다. 이리저리 썰.. 2014. 7. 24.
작은 감탄 아빠께서 양파를 잔뜩 가져오셨다. 옹글종글 알이 작은 녀석들이다. 한 손에 쥐어도 쏙 들어와 자취를 감춘다. 지인의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길러졌단다. 어쩐지... 요즘은 마트에 가면 감자만한 양파들이 여 보란 듯 기세 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녀석들은 성긴 망을 우격다짐으로 당장이라도 비집고 나올 듯한 태세다. 웬만한 채소는 옆에 붙여놓으면 크기에서 밀리는 모양새가 사뭇 호전적이기까지 하다. 농약도 농약이지만, 대개가 GMO 식품이어서 요리할 때마다 영 께름칙하기도 하다. 채소마저도 크고 예뻐야 소비자의 간택을 받는 시대. 인간 욕심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모처럼의 아담한 양파는 그래서 기쁘다. 오랜만에 작은 접시에도 쏙 들어오는 양파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자그마한 이대로도 이렇게나 예쁜데. 자연..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