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일상

귀향의 밤

by 디어샬럿 2014. 7. 24.

 

 

 

  부산행 밤 비행기로 돌아왔다. 동서고가로를 피해 신선대 길을 내달리듯 온 덕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적당한 습기와 특유의 짭조름한 바닷내를 머금은 공기. 반사적으로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손끝 발끝의 힘까지 쭈욱 빠져버릴 정도로 온몸이 늘어지는 편안함.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공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노랗고 발간 불빛들 탓인지 하늘은 채 검지 않았다. 점점이 박힌 불빛이 점멸하는 곤빛 밤의 항구가 달리는 차창의 사면을 쫓아왔다. 모처럼의 북항 경치가 반가워서 뜬금없게도 눈물이 났다. 곧 산까지 다닥다닥 이어진 아파트들을 보며, 드디어 부산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미학적 요소라곤 전혀 없는 성냥갑 산복주택들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이야. 이게 사람 사는 집이지! 하고, 말도 안 되는 감탄도 잠깐 내뱉었던 것 같다.


  일정 중 반절 이상이 등정. 이런저런 것들도 있었지만, 오름으로 시작해 산을 거처 다시 오름으로 끝났다. 어딘가를 잔뜩 오르내리고 힘껏 축축한 돌과 흙을 디뎠다. 긴장이 빠져나간 육신엔, 너무도 오랜만이어서 억울하고 뻐근한 근육통이 낼름 자리를 차지했다. 위험할 뻔한 순간도 있었으니 더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습도까지 엄청나서 좀 더 버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웬만하면 그날 그날 기록을 남기고 싶었지만, 일정 끝나면 자기 바쁠 정도로 곤한 날들이라 쉽지 않았다. 기억의 반감기가 오기 전에, 머릿속에 머무는 장면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남기곤 싶은데... 쉬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토막토막 떠도는 기억들과 유쾌한 기분들. 그리고 남은 건- 훈장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화상 수준의 그을린 자국과, 물갈이인지 몸 이곳저곳과 얼굴에 돋아오른 두드러기. 내일은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아- 역시 집이 최고다!


 

 

(2014.07.21)

 

 

 

 

'비밀의 화원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어서 미안해  (0) 2014.07.24
꾸역꾸역 남기는 일상  (0) 2014.07.24
능소화는 잘못없다  (0) 2014.07.24
저녁 설거지 단상  (0) 2014.07.24
작은 감탄  (0) 2014.07.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