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일상

저녁 설거지 단상

by 디어샬럿 2014. 7. 24.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보통 6시 즈음이지만 가족들이 영 늦으면 8시가 넘기도 한다. 에라 오늘은 저녁 굶는다 생각하고 안 먹으면 되는데, 다 같이 먹고 있는 밥상에서 혼자 쏙 빠지기가 그래서 ― 라는 건 솔직히 핑계다. 맛있게들 먹는 양을 보면 혀밑서부터 침이 고인다. 내 손을 거친 요리들의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국이나 찌개가 너무 짜진 않은지, 나물 간은 삼삼한지, 조림 간은 잘 배었는지... 딱 한 숟갈만, 진짜 맛만 보는 거야. 자기합리화로 시작된 수저질은 결국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끝이 난다.

​  오늘은 늦은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양파를 곁들인 김치찌개도 맛있었고, 양파와 볶은 애호박나물도 간이 잘 들었다. 햄에도 양파를 넣어 조려 구웠고 참치에도 다진 양파를 섞어 부쳤다. 이리저리 썰어넣은 덕에 냉장고 구석에 쌓인 양파도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양파는 여전히 작고 달고 맛있다. 반찬만 7첩이 넘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밥상이었다. 요 며칠 우리집 밥상을 만든 것은 팔 할이 양파다. 올망졸망 귀염둥이들에게 부쩍 고마운 요즘.

  하지만 맛난 저녁 후의 설거지는 아무래도 싫다. 온몸의 피가 위장으로 죄다 쏠려버려, 쌓인 그릇에 안구를 집중하는 '노동'조차도 고역이다. 것도 그렇고 저녁 차린 사람은 설거지 좀 빼주면 안 되는 걸까... 아님 그릇 쌓이는 꼴을 못 보는 내 탓인가. 누구나의 상상 속에 편안한 일상의 전형으로 각인돼 있는, 저녁 먹고 느긋하게 드러누워 고복격양할 성격은 역시 아닌가 싶다. 세제를 듬뿍 묻힌 수세미로 음식때 잔뜩 묻은 그릇을 뽀득뽀득 닦으며 오늘 저녁엔 생각했다. 내 남편은 거창한 집안일 도와줄 거 하나 없으니, 그저 내가 한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어주고 가끔 제때 설거지 좀 할 줄 알고 화장실 청소나 깔끔하게 잘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쓰고 보니 이 정도면 완전 거창하게 도와주는 거 아닌가? 아 아닌가? 생각을 뒤척이는 사이 하루가 간다.

 

 

(2014.07.14)

 

 

 

 



'비밀의 화원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향의 밤  (0) 2014.07.24
능소화는 잘못없다  (0) 2014.07.24
작은 감탄  (0) 2014.07.24
호언장담의 유통기한  (0) 2014.07.24
시간을 달리는 편지  (0) 2014.07.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