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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19

옛 작가를 추억하다 『 나는 아내를 거칠게 밀치고 문득 심한 멀미를 느꼈다. 온 세상이 낡은 차가 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마구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시 그놈의 지긋지긋한 멀미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도피하고 굴종해야 할 것으로 느낀 게 아니라 맞서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서 느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람 속에 도사린 끝없는 탐욕과 악의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 옳지 못할수록 당당하게 군림하는 것들의 본질을 알아내야겠다. 그것들의 비밀인 허구와 허약을 노출시켜야겠다. 설사 그것을 알아냄으로써 인생에 절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멀미일랑 다시는 말아야겠다. 다시는 비겁하지는 말아야겠다. 』 (pp.270-271, 중) 한때는 박완서 작가를 가장 좋아했다. 입시 문제집 지문에서 지겹도록 본 것관 별개였다.. 2016. 1. 24.
<순교자>, 김은국 출간 후 20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동시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올랐었던 이 ― 라는, '전설'로만 들었던 작품이자 작가였다. 영어로 쓰인 책이라 한국문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인 역작이다. 배경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중공군 개입 직전 국군 통치기의 평양. 공산당 비밀경찰에 의해 사살된 열두 목사와 와중에 살아남은 신 목사(+한 목사) 사이의 '진실'을 중심에 두고 책은 다양한 논제를 펼쳐낸다. '진리'를 위해 사건에 굳게 입을 닫은 신 목사, '대의'를 위해 진실을 숨기려는 장 대령, 진실은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 된다는 이 대위. 이 세 인물의 갈등이 핵심주제를 형성해간다. 여기에 처형된 목사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최후를 알고자 하는 박 군(.. 2015. 8. 28.
<전쟁과 악기>, 이청준 ― 무엇보다 먼저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어떤 음을 가리켜 우리들이 ‘도’니 ‘레’니 하는 음칭들은 애초에 그 음들이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는 절대적 음가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옥타브 내의 모든 음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 아니라 다른 음위와의 음차 관계로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음계와 계명). 우리들은 다만 우리가 익숙한 음차에 따라 약속된(심지어 음명까지도 우리들의 약속에 불과하다) 음차의 질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음차 질서 가운데서 어느 한 음위를 말살한다면 그와 이웃한 다른 음위의 개념도 함께 상실 당하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이미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음차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음차의 약속이 연쇄적으로 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하나의 악기를 예로 하여 생각해보자... 2015. 7. 19.
<미해결의 장>, 손창섭 초등학교의 그 콘크리트 담장에는 사변 통에 총탄이 남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나는 오늘도 걸음을 멈추고 그 구멍으로 운동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마침 쉬는 시간인 모양이다. 어린애들이 넓은 마당에 가득히 들끓고 있다. 나는 언제나처럼 어이없는 공상에 취해보는 것이다. 그 공상에 의하면, 나는 지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병리학자인 것이다. 난치의 피부병에 신음하고 있는 지구덩이의 위촉을 받고 병원체의 발견에 착수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발생되는 질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도 그 세균이 어떠한 상태로 발생, 번식해 나가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치료법에 있어서는 더욱 캄캄할 뿐이다. 나는 지구덩이에 대해서 면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한.. 2015.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