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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전쟁과 악기>, 이청준

by 디어샬럿 2015. 7. 19.

 

 

 

 

― 무엇보다 먼저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어떤 음을 가리켜 우리들이 ‘도’니 ‘레’니 하는 음칭들은 애초에 그 음들이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는 절대적 음가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옥타브 내의 모든 음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 아니라 다른 음위와의 음차 관계로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음계와 계명). 우리들은 다만 우리가 익숙한 음차에 따라 약속된(심지어 음명까지도 우리들의 약속에 불과하다) 음차의 질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음차 질서 가운데서 어느 한 음위를 말살한다면 그와 이웃한 다른 음위의 개념도 함께 상실 당하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이미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음차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음차의 약속이 연쇄적으로 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하나의 악기를 예로 하여 생각해보자. 이 악기는 소위 두 개의 반음을 포함하여 우리들이 익숙해 있는 여덟 음위의 음차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여덟 개의 음위들은 어느 것도 그 하나로서는 독립적인 음가를 지니지 못한다. 다만 하나의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음은 다른 음들과의 음차 관계(※=음정 관계)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상대적인 음위의) 음가를 지니게 된다. 이 악기의 음위들은 모두 이와 같이 상호 음차 관계 속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의 악기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pp.47~48)

 

 

 

 

― 타개해야 할 것은 반음이 아니다. 반음은 오히려 지금보다 그 음차를 더욱 세분하여 발전시켜가야 한다. 추방해야 할 것은 차라리 온음이다. 온음이야말로 당신들 같은 무식쟁이들이나 좋아하는 단순한 원시음이다.

 

  아무리 그들이 반음을 사랑하고 그것에 몰두해 있다 해도 그것이 설마 본심은 아니었으리라. 아마 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모든 음의 절대 가치를 주장하지 않고, 음가의 경중을 따지고, 당국자들의 의도에 맞섬으로써 거꾸로 어떤 특정음의 제거 문제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곧 어떤 음의 제거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음가 경중에 따른 상대적인 문제라는 원칙적인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 셈이었다. 당국으로서는 절호의 구실이었다.

 

 

― 보라. 당신들도 결국 어떤 특정음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다만 당신들과 우리는 제거하고자 하는 음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우리 쪽의 주장이 완전히 타당하다. 음의 향락은 전문가들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 전체가 그 음을 쉽게 즐기게 하고, 보다 빠른 사회의 발전을 도모코자 할 뿐이다. 추방해야 할 것은 역시 반음 쪽이다.

 

  결과는 처음에 염려했던 대로였다. (p.52)

 

 

 

 

- 이청준, <전쟁과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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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유달스레 쿤데라 느낌이 난다― 고, 읽으면서 줄곧 생각했던 어렴풋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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