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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편지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이 편지를 보냈다. 개구진 듯 맑은 눈이 인상적인 말리 소년 카림과, 벌써부터 미인의 기미가 보이는 네팔 소녀 루마다. 단체에서 조율한 건지 성별이 다른 두 아이와 결연이 됐다. 신기하게도 동갑내기. 사는 지역은 전혀 다르지만 소식지가 따로 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 편지가 단체에서 먼저 취합돼 후원자에게 보내지는 탓일 터다. 카림과는 3년, 루마와는 2년 반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어설픈 영어로 주고받은 편지도 어느덧 예닐곱 통. 또래임에도 상반된 성격이 편지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같은 아이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다. 아마 남녀의 차이라는 부분도 있을 거다. 느낌이 완전히 다른 편지가 같은 우편에 묶여 올 때마다, 명도도 채도도 정반대인 두 색이 기묘하.. 2014. 7. 24.
살리에리와 나를 위한 변명 안부인사를 건네받으면 기분이 좋다. 나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타인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설령 대화를 위한 인사래도, 그건 그 나름대로 고맙다. "안녕"보다 한결 보드라워 당장이라도 포근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럭저럭 지낸답니다. 어찌 지내세요? 되묻다보면 나 역시 그가 새삼 궁금하다. 정말 잘 지냈는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별일은 없는지. 하지만 달갑잖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단 게 한눈에도 보이는, 혹은 일장연설을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허울뿐인 안부인사 같은 것들. 적잖이 받아왔어도 역시 불편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의 신상을 둘러싼 이야깃거리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땐 더 그렇다. 어딘지 날이 선 듯도 같고, 구설거리를 찾으려는 것도 같은. 받는 이의 곤란함을 의도적으로 .. 2014. 7. 24.
육개장이 뭐라고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곤 급히 저녁준비를 했다. 아침에 산 두부를 조리고, 잠자고 있던 애호박도 깨워 새우젓에 후루룩 볶았다. 번갯불에 굽듯 햄도 부치고 달걀도 후딱 말고 있는 반찬 몇 개 내니 얼추 모양새는 갖춰졌는데... 역시 한국인인지라 국이 없으니 허전하다. 마땅한 걸 찾다 냉장고 귀퉁이서 오늘내일 하던 콩나물을 발견. 양지머리를 사다가 육개장(경상도식 쇠고기국)까지 끓이고 나니, 그제야 뭔가 저녁밥상 같다. 국은 의외의 부분에서 신경이 쓰인다. 육개장만 해도 그렇다. 고추씨를 기름에 볶아 걸러내 고추기름을 짜는 과정도, 핏물 잘 닦은 양지머리를 적당히 삶아 우리는 과정도, 좀 번거롭긴 해도 별 건 아니다. 복병은 불이다. 이런저런 레시피에선 불에만 올려두면 다 끝난 것처럼 주부(!)를 독려하지만.. 2014. 7. 24.
열일곱의 위안 해가 지더니, 눈치채지 못하는 새 비다. 놓쳤던 지난 2주분 푸른밤을 '경건히' 영접하기 위해 튠인라디오를 켰다. 마이클잭슨 특집이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노래들이 지난 전파를 타고 물길처럼 흘러들었다. 가슴을 적신다는 게 이런 걸까. 새삼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익히 알지만 또 들어도 좋은 비화들,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일화들, 하나하나 공감 가는 사연들. 얼마만에 접해보는 보드라운 이야기들인지. 나는 온전히 라디오에 녹아들었다. 그의 음악은 참으로 다양한 인생들의 단면을 채우고 있었다. 추억들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어느덧 그가 이곳을 떠난 지도 5년째. 사람들은 그립고 때로는 슬프다. 이따금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누구나의 이런저런 장면들 ..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