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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는 잘못없다 [연합뉴스] "능소화 꽃가루가 실명 초래?"... 유해성 논란 : http://bit.ly/1r0TIhg -- 그 무렵 그는 곧잘 능소화를 타고 이층집 베란다로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창문은 검고 깊은 심연이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심연에 도달하지 못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전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심연에 도달하지 못한 미진한 느낌은 쾌감인 동시에 공포감이기도 했다. 현금의 창은 꿈속에서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심연이었고, 현실에서는 이 세상 비밀을 다 삼켜버린 것처럼 깊고 은밀해서 그는 울고 싶도록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마침내 사춘기였다. - 박완서, .. 2014. 7. 24.
저녁 설거지 단상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보통 6시 즈음이지만 가족들이 영 늦으면 8시가 넘기도 한다. 에라 오늘은 저녁 굶는다 생각하고 안 먹으면 되는데, 다 같이 먹고 있는 밥상에서 혼자 쏙 빠지기가 그래서 ― 라는 건 솔직히 핑계다. 맛있게들 먹는 양을 보면 혀밑서부터 침이 고인다. 내 손을 거친 요리들의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국이나 찌개가 너무 짜진 않은지, 나물 간은 삼삼한지, 조림 간은 잘 배었는지... 딱 한 숟갈만, 진짜 맛만 보는 거야. 자기합리화로 시작된 수저질은 결국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끝이 난다. ​ 오늘은 늦은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양파를 곁들인 김치찌개도 맛있었고, 양파와 볶은 애호박나물도 간이 잘 들었다. 햄에도 양파를 넣어 조려 구웠고 참치에도 다진 양파를 섞어 부쳤다. 이리저리 썰.. 2014. 7. 24.
관록의 발라드 마이클잭슨 사후 앨범의 역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의 Michael이 그것. 이래저래 말이 많은 앨범이었고 나 역시 불만이 강했지만, 수록된 발라드들만큼은 전성기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천명을 앞두고 있던 마이클잭슨의 관록과 여유가 물씬 묻어나는 곡들. 한창 때의 화려함은 덜하지만 불필요한 힘이 빠져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마이클잭슨이 이런 노래도 지었어?" 싶은 담백하고 매력적인 발라드 넘버들. '진짜 발라드'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의미에서 마이클잭슨답다.       Keep Your Head Up과 (I Like) The Way You Love Me, 그리고 Best of Joy가 대표적이다. 각각 3, 4번 및 6번.. 2014. 7. 24.
기분 좋은 생경함 우연히 본 라디오스타에서 마이클잭슨 노래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젊은 마이클의 경쾌한 음성과 함께 터지는 MC들의 탄성이, 반가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를 좋아하게 된 후의 절반 이상이 음지에서의 시간이었던 때문일 거다. 마이클잭슨 좋단 말을 누구에게도 섣불리 할 수 없었던. 내가 그의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때는 하필 그를 둘러싼 두 번째 송사로 온통 시끄러울 무렵이었다.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추측들이 횟빛 의심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돌이켜보면 필요 이상으로 모두가 잔인했던 시절. 엄청난 인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돌변한 조롱과 갖은 비난 속에서 그의 음악을 좋아해도 되는지조차 고민이 됐다. 언젠가 책상에 올려둔 그의 앨범을 보곤 누구 것인지 묻던 친구의 얼굴에서, 마이..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