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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 언젠가 이런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날도 딱 오늘 같았다. 24개의 자모가 활자가 아닌 소리가 될 때, 남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 될 때, 잔뜩 날이 선 시간을 타기까지 했을 때 그것이 어떠했는지, 얼마나 깊은 상흔으로 남는지 그처럼 생생히 느꼈던 적이 없었다. 이를 드러낸 날것의 말들은 마구 내리꽂히며 어깨 위를 짓누르고 가슴 속을 후볐다. 뇌리에 남고 기억이 됐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그토록 나는 무방비했다. 왜인지 그것은 내 안에서 다시 언어로 치환됐고, 기어이 기록으로 남았다. 그 일기를 마주할 때마다 그때의 서늘한 말들이 살아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기록을 무심코라도 스칠 때마다 나는 오한처럼 몸서리를 친다. 오늘, 보이지 않는 것에 또 한 번 짓눌렸다. 어디서부터 어긋난지도 모르는 그것의 .. 2020. 8. 5.
역전의 용사 기분에 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나는 용사 이상의 투사라도 된 것 마냥 끊임없이 침범하는 기분과 포물선을 그리는 생체리듬의 시간차 공격을 홀로 막아냈다. 그리고 나름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작은 '이김'이 삶에 이다지도 힘이 될 수 있다니. 그래서 다짐한다. 잠식당하지 않겠다고, 오늘도 내일도. 기분에도 일상에도 지지 않고, 이 시간들을 다 지켜내겠다고. 무례한 언사들 속에서도 배울 시간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다. 기어코 지지 않은 나를 보듬으며, 이제는 조금씩 더욱 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또한 이 하루의 끝에 찾아온 행운에 온 힘을 다해 감사하며,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에 숨 가쁘게 기뻐하며, 작은 승리의 증거를 남겨두는 날. 2020. 5. 18.
또 다시, 감사 사건이 형성한 우주의 한가운데, 작지만 선명히 빛나는 진심을 본다. 그것은 마치 항성과도 같아서 광막한 무심(無心)의 진공에서도, 시야를 정신없이 가리는 행성과 위성의 무리에서도, 심지어 몇 백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도 빛과 열을 내뿜으며 존재를 알려온다. 그렇기에 인간은 진심 하나로 그토록 모진 것들을 견뎌내는지도 모른다. 요사이의 나는 - 채 언어의 마수로 자라진 못했으나 그럼에도 알 수밖에 없는 - 습하고 축축한 무언(無言)의 뿌리들 사이에서 홀로 온기를 내뿜는 용기를 마주하고 있다. 다 알 것 같기에 어떤 것에도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데, 그렇기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마음에 조용하고도 하염없이 울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온 힘을 다해 감사하는 것뿐이다. 정말 온 힘을, 온 마.. 2020. 3. 23.
넋두리 같은 위안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을 때, 모진 말과 야속한 상황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는 순간에, 아무도 안 보이는 곳을 찾아 홀로 곱씹고 울 수밖에 없는 이런 날에, 벌써 몇 번이나 맞음에도 맞닥뜨릴 적마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런 찰나에, 스스로가 부끄럽고 처량한 이런 시간들에 — 마냥 지칠 때. The long and winding road that leads to your door will never disappear I've seen that road before It always leads me here Lead me to your door The wild and windy night that the rain washed away has left a pool of tears, crying fo.. 2020.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