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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순간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

by 디어샬럿 2020. 8. 5.

언젠가 이런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날도 딱 오늘 같았다. 24개의 자모가 활자가 아닌 소리가 될 때, 남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 될 때, 잔뜩 날이 선 시간을 타기까지 했을 때 그것이 어떠했는지, 얼마나 깊은 상흔으로 남는지 그처럼 생생히 느꼈던 적이 없었다. 이를 드러낸 날것의 말들은 마구 내리꽂히며 어깨 위를 짓누르고 가슴 속을 후볐다. 뇌리에 남고 기억이 됐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그토록 나는 무방비했다. 왜인지 그것은 내 안에서 다시 언어로 치환됐고, 기어이 기록으로 남았다. 그 일기를 마주할 때마다 그때의 서늘한 말들이 살아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기록을 무심코라도 스칠 때마다 나는 오한처럼 몸서리를 친다.

오늘, 보이지 않는 것에 또 한 번 짓눌렸다. 어디서부터 어긋난지도 모르는 그것의 무게. 그럼에도 오늘은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투쟁은 참았던 감정의 걷잡을 수 없는 분출로 이어졌다. 나를 팽개치다시피 하는 이 시공을, 이제는 애정을 빙자한 인내로 끌어안고 갈 엄두가 더는 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품어내고 싶은 것들이 무참하고 철저히 배신 혹은 무시를 해 올 때, 그 섣부른 시선과 냉담한 말들을 견디며 애써 다시 포장해야만 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비굴하고 처절하기 짝이 없는가. 세상 천지에 당연한 존재가 없거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너무나 당연해진다. 당연해진 나는 슬프고, 때로는 오늘처럼 분노한다.

어떤 발화는 무겁고 어떤 발화는 모질며 어떤 발화는 매정하고 어떤 발화는 슬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짊은 인간의 찰나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견고히 두른 가면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당연함, 매정함, 모진 것들이 단 한 순간의 말들로 투명하게 비칠 때... 나는 한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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