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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58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3~4년 전 읽고 정리해 둔 것. 대학 입학하고서 호기롭게 집어들고선 턱턱 막히는 독해 호흡에 한껏 좌절했던 풋내기 스물의 단상이, 에 대한 첫 기억이다. 부작용이었던지, 이후 한동안은 철학을 미지의 세계처럼 여기게 된 적이 있었다. 다시 읽기까지 6년께 걸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 것 아닌 단어들이 빚어내는 견고한 체계는 여전히 녹록잖지만, 실로 매력적인 세계다. 시간을 뛰어넘는 통찰에 감탄도 해 가며 밑줄도 긋고 책 귀퉁이도 열심히 접어올렸더랬다. --- 1.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 목적들은 명백히 여럿인 것으로 보이고, 우리는 이 목적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므로―예를 들어 부(富), 피리,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구들의 선택.. 2015. 1. 4.
대심문관 ::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트르 도스토옙스키 -- 이봐, 알료샤, 모든 인간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그 고뇌로써 영원히 조화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그 속에 끌어들여야 하느냐 말이야? 그걸 나한테 말해줄 수 없겠니?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고통을 겪어야 하고, 그 고통으로써 조화를 보상해야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무엇 때문에 어린애들까지 재료 속에 끼어들어 남을 위한 미래의 조화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거냐? (p.400) -- 광야에서의 첫째 물음은 바로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 거야. ...그것은 "누구를 숭배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지. 자유를 누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괴롭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는 한시 바삐 자기가 숭배할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인간은 .. 2014. 12. 29.
<소설가의 일>, 김연수 소설을 쓰겠다면, 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 김연수, 2014. 12. 28.
열한 번째 계명 :: <불멸>, 밀란 쿤데라 기자들은 질문이라는 것이 단지 손에 수첩을 들고 겸손하게 설문조사나 하는 그런 리포터의 작업 방식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고 있었다. 기자란 그저 질문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어떤 주제에 관해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지닌 자다. ... 기자의 권력은 질문을 던질 권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요구할 권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이다. 부탁하건대, 모세가 정리한 하느님의 십계명 가운데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짓말 마."라고 말하는 자는 그 이전에 "대답하라!"라고 말했을 게 분명한데, 하느님은 타인에게 대답을 강요할 권리를 누구에게도 부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명령하는.. 2014.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