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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141

아직도 어려운 언어의 앞에서 서성였다. 고르고 골라도 말들은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 말들은 잔뜩 그리고 힘껏 움켜쥔 손 사이로 모래알처럼 대책없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남은 것이라곤 반짝임을 잃은 자모 몇 톨. 보잘 것 없는 나의 언어들을 뒤로 한 채 메신저 문자 사이를 일렁이는 커서를 보며 생각했다. 이럴 때만 되면 빈곤해지기 그지없는 내 말의 세계와, 정량 이상을 가까스로 끌어안은 지나친 마음과, 긴장을 놓았던 순간들이 만들어낸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미처 전해지지 못한 무언가- 끝내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무언가(無言歌)가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하게 만드는 무언가들. 생각할수록 늘어만 간다. 이런 때만큼 언어의 한계가 느껴지는 적이 있었던가 싶다. 어떤 의미론 말이란 게 단지.. 2019. 9. 3.
내 것의 힘 # 1. 어제까지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보를 들었다.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취향과는 제법 먼 곡들이다. 그럼에도 노래엔 힘이 있다. 강한 탄성(彈性)을 지닌 내 ‘듣는 귀’조차도 이 노래들 앞에선 일단 취향의 영역으로 잽싸게 튀어돌아가려는 성질을 멈춘다. 수록곡만 열여덟 개에 이르는 이 앨범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역시나 ‘테일러-다움’일 거다. 곡의 낱장마다 녹아든 그녀의 자아는 음악을 비집어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10년차 슈퍼스타와 인간 테일러 스위프트를 넘나드는 특유의 매력도 여전히 색을 더한다. # 2. 오늘은 종일 마이클 잭슨 앨범을 듣는다. 살아 있었다면 예순 한 번째 생일. 우리 나이론 예순 하고도 둘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의 생일이란 말은 슬픈 모순이다. 입에 머.. 2019. 8. 29.
조금이 만드는 지금 때론 아주 작은 것으로 하루가 조금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들 적이 있다. 늘 듣던 새벽 생방송 라디오를 대신해 무심코 둘러본 다시듣기 서비스에서 취향을 정조준하는 심야 프로그램을 만났다든지, 심지어 그 프로그램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아예 타이틀로 삼아 '노골적 편애'로 선전포고를 해 왔다든지, 게다가 그 많은 회차 중 야심차게 고른 편이 공교롭게도 그들의 '시작'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였다든지 하는 것들. 이를테면 오늘이 그렇다. - 라니, 지상파 라디오로선 흔치 않은 이름이다. 아무 칸이나 클릭했는데 하필 여름휴가 특집이랬다. 결성 무렵부터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까지, 타이틀의 주인공 그룹 되는 입장에선 더없이 지난했을 시간이 30분 남짓의 이야기로 재편된 '비틀즈 오딧세이' 편이었다. .. 2019. 8. 20.
어느 날 라디오가 내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당연했던 걸까. 간신히 버틴 하루가 어깨 위로 가차없이 무너져내리는 일상의 끝. 견고히 두른 무심함 사이로 순간순간 날을 들이미는 울화와 설움을 꾹꾹 참으며 라디오를 켰다. 배캠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한때는 내 나날의 끝을 알리던 프로그램이었다. 그게 벌써 십육칠년 전 이야기다.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건 아마도 작년 말. 시간을 뛰어넘어 만난 배캠에선, 김영하 작가의 약간 더 결이 곱고 조금은 더 가벼우며 미지근한 속도감이 단어마다 뒤따르는 특유의 목소리가 배철수 아저씨의 느긋한 음성을 대신하고 있다. 철수 아저씨의 휴가를 메우기 위한 스페셜 DJ가 됐다며,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긴 그의 글을 본 기억이 났다. 문득 털어놓고 싶었다. 무장해제 상태로 튀어오르려는 감정의 생니들이 혹여나 잇자욱을.. 2019.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