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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141

육개장이 뭐라고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곤 급히 저녁준비를 했다. 아침에 산 두부를 조리고, 잠자고 있던 애호박도 깨워 새우젓에 후루룩 볶았다. 번갯불에 굽듯 햄도 부치고 달걀도 후딱 말고 있는 반찬 몇 개 내니 얼추 모양새는 갖춰졌는데... 역시 한국인인지라 국이 없으니 허전하다. 마땅한 걸 찾다 냉장고 귀퉁이서 오늘내일 하던 콩나물을 발견. 양지머리를 사다가 육개장(경상도식 쇠고기국)까지 끓이고 나니, 그제야 뭔가 저녁밥상 같다. 국은 의외의 부분에서 신경이 쓰인다. 육개장만 해도 그렇다. 고추씨를 기름에 볶아 걸러내 고추기름을 짜는 과정도, 핏물 잘 닦은 양지머리를 적당히 삶아 우리는 과정도, 좀 번거롭긴 해도 별 건 아니다. 복병은 불이다. 이런저런 레시피에선 불에만 올려두면 다 끝난 것처럼 주부(!)를 독려하지만.. 2014. 7. 24.
새삼스런 아침 한 달 여 만에 아침 조깅을 나섰다. 모처럼의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근 열흘 만이었던가. 마른 하늘이 반갑고 아까워 도무지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한여름의 깨질 듯 투명한 하늘과 기세 좋게 자리한 녹음, 햇발에 반짝이는 물빛과 무르익은 바다내음... 수없이 본 풍경이건만 새삼스럽게도 애틋했다. 횟빛 아침을 열 번이나 맞고서야 느끼는 보얀 아침의 소중함이라니.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일상의 가치를 놓쳐온 걸까. 작은 것에도 사람에도 늘 감사하자는 다짐은 매일의 홍수에 가라앉아버리기 일쑤. 간만의 창창한 동백섬은 그래서 고마웠다. 뛰다 걷다 하며 몇 번이고 기억했다. 곧 올 장마 전까지 많이 봐 둬야지. 그나저나 정도전 끝났다. 1화부터 봐 와선지 마음이 헛헛하다. 6년 만에 본방사수한 주말사극이었다... 2014. 7. 24.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이곳 바다도시에도 어느덧 열대야가 찾아왔다. 선풍기 가까이 대자로 뻗어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여름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지만 예외가 있다면 이 순간이다. (나름 고층임에도) 열어젖힌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여행객의 들뜬 노랫소리와, 익숙한 선풍기 바람. 오늘은 종일 몸이 무거웠다. 후텁지근한 여름습기가 어깨 위로 축축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크게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잠이 쏟아진다. 황금같은 토요일밤에 왠지 억울하지만. 으 진짜 잠들 것 같으니 빨리 끝맺어야지. 달콤유쾌한 스티비 원더를 듣다가. 노래만큼이나 기분 좋은 꿈을 꿨으면- "그냥,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어 전화했어요." (2014.06.28) 2014. 7. 24.
흑백의 쳇 베이커 쳇 베이커는 일관되다. 어딘지 흑백의 모노컷 느낌이다. 그늘 한 자락을 이고 있는 듯한 인상. 공허라든지 고독 따위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이이의 모습이 아닐까 싶지만, 그럼에도 까마득한 칠흑보단 어스름한 담흑의 이미지. 그의 트럼펫 사운드도 그를 닮았다. 어둡지만 마냥 무겁지 않다. 나른하면서도 힘이 빠지지 않고, 여백을 주면서도 빈틈이 없다. 싱코페이션과 임프로비제이션의 남용을 자제한 '최소한의 것들'의 미학이랄까. 노래도 곧잘 했는데, 타고난 음색마저도 그 흔한 꾸밈음 하나 없이 담백하다. 이쯤되면 천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수와 우울의 아이콘(!) 쳇 베이커 연주 및 노래, "Let's Get Lost". 메이저 멜로디의 밝은 진행에도 어김없이 덧입혀진 담흑빛 음색이 매력적이다. (2014.0..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