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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141

마음만큼 까마득한 말 너무 좋아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해얄지 모르겠다. 어른이란 것이 돼도 마찬가지다. 보이지만 않는다면야 숨이라도 한껏 들이키고 시작하고 싶다. 습기가 잔뜩 어린 공기처럼 이리저리 스미고 가득 무거워진 마음. 주먹만한 공들이 사면체 심장을 여기저기 튀어다니는 것 같다. 수많은 말들 중에 내 것 같은 말이 없다. 이런저런 언어들이 일렬종대를 해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정의 지평선에 서서 보는 언어의 세계란 까마득히 떨어진 아예 다른 대륙 같다. 이름 하나에도 인사 한 줄에도 괜한 고민을 쏟아붓다,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꺼내버리고 만다. "友達に手紙を書くときみたいに スラスラ言葉が出てくればいいのに..." 오랜만에 곱씹는 가사 한 줄에 꽂혀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생각. 정말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처.. 2014. 8. 3.
天文薄明 천문박명이란 말을, 부끄럽게도 처음 접했다. 태양 고도가 지평선 아래 16도 정도까지 기울어진 때를 일컫는다는 딱딱한 말이 처음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일몰 후 1시간 반 정도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루 중 가장 별이 잘 보이는 시간대라 한다. 어스름 빛까지 거둔 하늘이 까만 암흑으로 완전히 접어들기 전 도시의 빛과 공존하는 푸른 밤. 생각해보니 별을 보려면 당연히 새벽이라고, 일말의 의심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독보적이기보단 다른 빛들과 어울릴 때여야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건가. 대지의 광원이 희번뜩대는 요즘이야 좀 달라진 말이라지만. 별이 가장 반짝이기 위해선 어딘가의 옅은 빛이 필요하다... 각성의 세계를 조용히 울리는 한 마디. 2014. 7. 30.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의 기미. 잊을 만하니 찾아왔다. 며칠 아슬아슬하더니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모양이다. 어젯밤부터 가시가 콕 박힌 듯 목이 따끔거리더니, 마침내 코와 머리까지 감기 바이러스에 항복하고 말았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대책없이 흐르는 콧물과 뒷덜미를 꽉 누르는 듯 갑갑한 두통. 에어컨 한 번 쐬지 않은 여름이건만 억울하게 웬 감긴가 싶다. 이렇게 된 거 왕창 틀어버릴까 하다가 전기세 생각하니 손이 떨려 그만둔다. 아니야 머리 아픈 건 어쩌면 당분이 떨어진 탓인지도 몰라 하며, 신물나게 진한 핫초코라도 마시고파 듣는 Savoy Truffle. . . . 들을 만한 다른 버전이 있나 찾아보니 맙소사! 엘라가 부른 게 있다. 고혹적인 음색으로 우아하게 디저트 이름을 무한나열하는 재즈거장이라니, 뭔가 웃기면서.. 2014. 7. 29.
어쩌면 주제 넘는 고민 아직은 아픈 손가락인가 보다. 놓친 본방송을 기어이 찾아보고야 말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선지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자기반성과 변화는 필요한 때니까. 다만 방송이 꿈꾸는 '언론의 민낯'엔 아무래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언론의 민낯이 뭐길래? 정의라는 열쇠를 빌려 무단침입을 일삼는 특권의식? 물먹기 싫은 자신은 숨기고 데스크 탓부터 하고보는 위선적인 면죄부? 언론의 민낯이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야말로 이젠 벗어버릴 때 아닌가? 환경과 사람이 그대로인 어느새고 그곳의 민낯이 볼 만했던 적이라도 있었나 싶다. 부쩍, 언론이란 플라톤 류의 이데아가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이런저런 미사와 흠결 없는 이론들로 견고하게 구축됐지만 실존여부는 확인되지 않는 천공의 성. 이데아 세계에 세워진 이 튼튼한 성은 .. 2014.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