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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141

기록해야만 하는 감사를 위해 새해가 밝자마자 분주했다. 이 일을 하고서부터 쭉 그랬으니 어느덧 만 3년째다. 올해는 더 그랬던 것 같다. 또 한 번 중요한 순간에 마주한 헤어짐과 만남에 휩쓸릴 뻔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버텨냈다, 는 말이 적절한 조금의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서 시작된 날들. 세 번을 해 왔지만 여전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그 날들을 보냈다. 어제로 77일째였다. 사람 때문이라는 말 외에는 더 형언할 길이 없는 날들이었다. 어떤 한계 앞에선 부끄러워 숨어버리고만 싶고, 더없이 실망스러운 순간들로 소비되는 나의 밤들엔 때로 정말 울고 싶었다. 욕심 탓이라면 탓일까.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뜯어고치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새웠다. 마감일 3주 전부터는 이틀에 한 번.. 2023. 3. 19.
희망의 끝에서 끝까지 갔다가 마주한 것이, 돌아온 것이 이런 것이라니. 보잘 것 없이 또 마주한 끝을 부여잡으며 나는 또 마음 한구석을 바스라뜨리는 것들에 또 조금 울었다.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2023. 1. 19.
지나간 대로 의미 있는 시간 또다시 제법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휘발된 날들 사이사이 남겨야 했을 사건도 마음도 분명 존재했을 거다. 적잖은 날들을 지나왔는데, 통과한 순간들을 곱씹어도 우러나오는 것이 없어 조금 서글펐다. 지나간 것이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건 그 시간을 충실히 체화할 수 있는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기록이든 기억이든,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단을 통해 남김으로써 시간을 소화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어디에도 남지 않은 내 ‘백지시간’들은 어쩌면 행방조차도 묘연해져 버린 게 아닐지. 상념이 여기까지 이를 때면 모로 누운 채 입술을 물어뜯으며 밤잠을 설친다. 서너 날은 일터에서 쪽잠을 자거나 밤을 새웠고, 서너 달 동안은 일상의 대부분을 회사라는 공고한 세계에 봉납했다. 당시의 그것은 하나의 .. 2021. 6. 24.
비가 내게 알려준 것 출근길에 막내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막내가 늦깎이 군인이 돼 입소한 지도 2주가 훌쩍 지났다. 내 또래들이 복무할 때만 해도 위문편지란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 쓰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국방부 앱의 메뉴로 들어가 글을 쓰면, (아마도) 분대장이 그걸 출력해서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식인 것 같다. '등록' 버튼을 누르면 '접수완료' 배너가 붙고, '출력완료' 배너가 뜨면 편지가 병사에게 갈 준비가 됐단 뜻이다.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구나, 생각하는데 '캠프가족'들 말로는 그래도 종이편지는 또 보내줘야 한단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집에서 온 편지를 소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읽어주는 문화가 있긴 한가 싶지만, 내 경험의 지평에 없는 영역이다 보니 상상에 그치고 만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 2020.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