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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Xscape, 그래도 그는 옳다

by 디어샬럿 2014. 12. 31.

 

 

 

  살아있다면 우리 나이로 57세다. 만으로 반백을 한 달 여 남겨두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다섯 해가 지났고, 두 번째 사후 앨범이 나왔다. 


  굳이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내겐 그리 인상적인 앨범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마음이 동한 건, 세밑이기 때문이다. 이 즈음이면 라디오고 잡지고 가릴 것 없이 올해의 앨범 따위를 열 장 내외로 선정하는데, 이 앨범은 어디든 빠짐없이 순위에 들었다. 그의 부재와 음악의 완성도는 구태여 논할 필요가 없었다. 전성기에 녹음된 노래, 세간에 공개된 적 없는 음악, 무엇보다 그를 향한 여전한 그리움 앞에서 재단된 평가는 무의미했다. 공연한 말보단 맹목적인 반가움이 더 적확한 때도 있다. 그래서다. 해가 가기 전, 새 앨범으로 잠깐이나마 반가웠고 오래토록 그리웠던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다.

 

  마이클잭슨의 생전 음악을 아는 이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앨범임은 분명하다. 그의 허락을 받지 못했던 곡의 완성도에 대한 의문이 일단은 가장 큰 이유다. 거기에 살아서 척을 지다시피 한 소속사가, 고인의 죽음 이후 이 모든 과정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데서 생기는 반감도 겹친다. 전작 Michael이 그랬다. 사후 앨범은 어쩔 수 없단 회의가 짙었던 와중에, Xscape이 출시된다는 소식은 거짓말처럼 발표됐다. 하필 만우절이었다. 놀라긴 했지만 기대는 크지 않았다. 이미 팬 사이에선 공공연히 공개된 곡들이 리스트로 올라 다소 김이 빠진 감도 있었다.

 

  뚜껑을 여니 달랐다. 그래도 나오니 마냥 좋았다. 5월 13일, 하루 늦은 오프라인 판매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멜론서 전곡을 듣고 또 들었다. 새 앨범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사람들은 역시 마이클잭슨이라 추켜세웠다. 라디오에선 온종일 그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어디서든 그이의 이름과 이야기가 넘실댔다.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1위에 '마이클잭슨' 다섯 자가 올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의 새 앨범이자 작고한 아티스트의 '유작'이 아닌 '신작'. 그것만으로도 이 앨범이 주는 상징성은 충격적이고도 묵직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처음에 다소 싱겁게 들렸던 원곡이 외려 요즘 자꾸 손이 간다. 강렬한 현대 사운드로 중무장한 편곡본은 들을수록 어딘지 아쉽다. 노래 자체는 괜찮지만 마이클의 것 같지 않은 편곡도 꽤 있는데, 갈수록 이질감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팀바랜드의 색채가 마이클잭슨의 음악과 꼭 맞는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의문이다. 그래도 전작처럼 아주 싫지는 않다. 오히려 좋다. 새 음악만으로 들뜨고 행복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2차원의 평면공간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마이클의 강렬한 눈빛으로 남을 Xscape는, 이젠 지구인이 아닌 그가 우주에서 보낸 메시지 같기도 하다. 나를 잊지 말아요, 내 음악은 언제나 당신의 편입니다.

 

 

 

 

 

Track 01. Love Never Felt So Good

  앨범의 타이틀 넘버였다. 폴 앵카와 존 맥클레인이 공동으로 작곡한 것을 1983년에 녹음한 곡이다. 수록곡 중 가장 수려한 편곡으로 첫 손가락에 꼽힌다. 당시의 마이클잭슨이 선보였던 음악을 그대로 살리고 있기도 하다. 디스코 리듬을 타고 청명하게 어우러지는 젊디 젊은 마이클의 목소리가 일품이다. 마냥 아이 같았던 당시의 그가 그리워지는 곡.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녹음이 덧대어진 편곡본에선 비트가 좀 더 두드러진다.

 

 

 

 

Track 02. Chicago

  마이클이 유독 마음에 들어했다는 곡이다. 소니뮤직의 전 부사장인 코니 루니가 작곡했다. 최초 녹음본에는 "She Was Lovin' Me"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1999년 즈음에 데모본을 받고 바로 녹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유의 황망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분위기 때문에 원곡을 훨씬 좋아한다. 팀바랜드가 편곡했는데, 원곡의 가사와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오리가 꽥꽥대는 것 같은 도입부의 신디사이저 종종대는 음부터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편곡이 원곡을 못 따라간 케이스.

 

 

 

 

Track 03. Loving You

  마이클잭슨이 작사작곡했다. 원곡은 얌전하고 말간 달밤의 느낌이 강한데, 음원이 좀 상했는지 사운드 왜곡이 좀 있다. 이 곡 역시 팀바랜드가 편곡했지만 시카고에 비하면 잘 된 편이다. 팀바랜드 특유의 강한 비트와 신디사이저 소리 탓에 원곡과 분위기는 좀 달라졌지만 들을 만하다. 멜로디 라인이 워낙에 좋은 덕인 듯도 하다.

 

 

http://dearcharlotte.tistory.com/45

 Track 04. A Place with No Name

  일전에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관해 적어놓은 글이 있어 영상을 대체해 첨부했다. 밴드 아메리카의 듀이 버넬, 닥터 프리즈와 마이클잭슨이 공동으로 작곡했다. 곡의 모티프는 America의 'A Horse with No Name'에서 따 왔다. 대체로 편곡이 잘 됐다고 보는 평이 많다. 나 역시 이 곡은 원곡보다 편곡본을 더 즐겨 들었다.

 

 

 

 

Track 05. Slave To The Rhythm

  애매하다. 원곡도 편곡도 어느 하나 특출나게 더 낫다고 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론 원곡을 좋아하는데, 미완성 버전이라 그런지 사운드가 덜 들어찬 느낌이다. 그렇다고 졸지에 클럽음악으로 만들어버린 팀바랜드 쪽에 손을 들어줄 수도 없고. Xscape 앨범이 발매되기 전 원곡이라 유튜브에 떠돌아다녔던 버전이 정말 좋았다. 알고 보니 그 버전이 누군가가 만든 리믹스였지만.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가장 기대받았던 만큼 가장 실망스런 평가가 뒤따르는 편곡본이다.

 

 

 

Track 08. Xscape

  나왔다, 이 노래. 본디 2001년작 Invincible 앨범에 수록되기로 예정돼 있었다가 음원이 유출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제외시켰다 한다. 당시 마이클잭슨의 분노가 어마어마했다고. 원곡 자체가 완성된 버전이다. 편곡본은 원곡의 멜로디만 남기고 거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봐도 무방할 정도. Invincible의 주 프로듀서였던 로드니 저킨스가 편곡을 맡았는데, 팬과 일반 청취자 사이의 온도차가 큰 버전 중 하나다. 팬들 입장에서야 로드니 저킨스의 원죄(!)가 있는 만큼 고깝게 보이지 않는 게 사실. 특히 이 곡은 원곡이 이미 잘 알려진 상태였다. 원래 Xscape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터무니없으리만치 각색된 편곡본에 실망한 팬들이 적잖다. 반면 일반 리스너들에게선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개인적으론 원곡을 더 좋아하지만, 편곡본도 썩 나쁘게 들리진 않는다. "마이클이 살아있단 생각으로 임했다" "최대한 펑키해지려 노력했다"는 로드니 저킨스의 변이 무색하진 않은 편곡이다. 다만 사운드가 치밀하지 못한 건, 역시 이이의 능력은 여기까진가 싶은 부분.

 

 

 차분히 생각해보면 새 앨범은 나와줬다는 것만으로 고마웠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이런 정도의 성의라면 다음 유작도 기대를 못 할 건 아니다. 그가 죽기 전 했던 말처럼 아직 보여줄 것이 너무나 많다. 마이클잭슨은, 내겐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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