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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Rubber Soul, 전설이 된 청년들의 낭만을 찬양하며

by 디어샬럿 2014. 12. 30.

 

 

  지금보다 약간 덜 추운 때, 이를테면 늦가을 정도 될까. 11월 초순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덜 여미어진 옷깃 틈새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훅훅 들어오는 때, 맵싸한 공기에 그만 양 볼이 얼얼해지기 시작하는 때, 그맘때면 으레 생각나는 게 이 앨범이다. 1965년 12월 초에 출시된 비틀즈의 6집 앨범 Rubber Soul. 그즈음의 영국 공기만큼이나 칙칙하고 짙은 녹빛의 앨범 자켓이 인상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을 앞둔 알싸한 바람이 코 끝을 맵게 스칠 것만 같다. 컷을 눈으로 스윽 훑자마자 비정상적이게 크고 선명해서 장난스러운 듯도 한 타이틀이 시야에 들어온다. 알알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멋지게 골려주려 작정이라도 한 듯 떡하니 붙어있는 양을 보면, 이렇게나 다른 느낌들이 이토록 어울리기도 어지간히 힘들지 않을까 싶은 마음마저 든다. 수록곡들의 오묘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자켓임에 틀림없다. 청자의 귀에 앞서 눈을 잡아두는 것부터 성공한 셈이다.

 

 

 

 

  수록곡 한 곡 한 곡의 양과 질에서도 '역시 비틀즈'란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의외로 앨범 작업 기간은 밭은 편이었다. 직전의 Help! 앨범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미리 야금야금 작업해 둔 것도 있었다지만, 계획한 출시 일정에 맞추느라 막판엔 녹음실에서 일출을 보기도 예사였다 한다. 동시에 다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총 13장의 앨범으로 대표되는 비틀즈 음악의 8년 역사에서 분기점 역할을 한 앨범이기도 하다. 흔히 이 앨범을 기점으로 비틀즈 음악의 전후기를 나누는 탓이다. 때문에 과도기 요소를 모두 가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개인적으론 이 앨범이 이후 변화의 분수령인 건 분명하지만,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전기의 무게가 좀 더 실려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만큼 Revolver 앨범부터의 비틀즈의 변화는 가히 혁명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비틀즈의 음악'을 넘어 '현대 음악'의 진보를 이끌어낸 독보적인 사운드와 과감한 선율이야말로, 후기에 이르러 음악적 완성에 도달한 비틀즈를 칭송하는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리버풀 출신의 청년 넷이 '전설'로 등극하기 시작한 변곡점이자 발판이 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거의가 수작인 비틀즈 앨범 중에서도 이 앨범에 애착이 깊다.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청년들의 아직 순수하고 설익은 낭만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인 터다.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단단하고 이후와 비교해 말랑하다. 그 미묘한 질감의 차이가, 꼭 거대한 서사의 세계를 축조하기 직전 남은 마지막 서정의 흔적 같다. 빈틈없고 견고한 진보의 피안으로 접어들기 전,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아는 로맨스를 향한 최후의 기록 같기도 하다. 적당한 순수와 농익은 감성과 다신 읊지 않을 낭만이 가득한, 너무 설익지 않은 청년의 음악이어서 좋다. 폐부를 깊숙이 스미고 들어오는 멜로디는 젊지만 불콰하지 않다. 혈기와 치기가 어린 멜로디나 창법을, 단순한 조성이나 기교를 배제한 악기 연주라는 적당한 냉기로 정련하고 단련했다. 선율 사이사이에 늦가을 바람 냄새가 잔뜩 묻은 것만 같다. 피부에 닿아올 듯 짙고 아련한 음악들을 듣다, 정신 없이 흐르는 39분 여의 재생 시간이 아까워 입맛을 다시게 된다.

 

 

 

 

Track 02. Norwegian Wood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원작 제목. 비틀즈를 특히 좋아했던 하루키가 종일 이 노래를 듣다 소설의 제목을 정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내에서도 이 곡이 몇 번은 언급됐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존 레논 작곡 ―앨범엔 (with Paul)이라고 돼 있으나, 공동작곡인 경우엔 John and Paul로 명기한 관례를 보면 존의 비중이 높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 쓸쓸하고 공허하면서도 서정적인 진행이 마음을 끈다. 들을 때마다 시간에 휩쓸려 나도 몰래 흩놓고 온 무언가를 떠올리게 돼 어딘지 감성적이게 된다. 이즈음부터 도드라지기 시작하는 시타 소리는, 당연히 조지 해리슨 연주.

 

 

 

 

Track 05. Think For Yourself

  조지 해리슨 작곡. 젊은 혈기가 정제된 사운드 덕에 기분 좋게 발현되는 곡이다. 조지의 인상만큼이나 남성적이고 거침없다고 할까. 그런 한편으론 섬세한 구석도 있어 영 거칠게만 들리지 않는 게 신기하다. 초창기 비틀즈의 비트 빠른 곡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곡. 비슷한 비트의 곡들로만 비교하면 외려 후기 곡들의 성격을 많이 닮아있기도 하다.

 

 

 

 

Track 07. Michelle

    대망의 미셸. 폴 매카트니가 작곡했다. 올 타임 베스트 멜로디 메이커라 불리는 그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은 곡. 앨범의 컨셉과 어우러지면서도 폴 특유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 폴이 작곡한 곡뿐 아니라 비틀즈 전체 곡을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노래. 요즘 같은 때 가만히 혼자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흥얼대곤 한다.

 

 

 

 

Track 09. Girl

  존 레논 작곡. 초기 존의 곡에서 자주 보이는 특유의 나른한 쓸쓸함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주말, 살짝은 쌀쌀한 감이 있는 맑은 겨울 하늘을 바라보다 낮잠이 까무룩 들어버릴 것 같은 곡. 왠지 기분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Track 11. In My Life

  이렇게 정다운 선율이 다 있을까. 포근하면서도 애틋한 멜로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투박한 감이 있는 멜로디를 촘촘한 사운드와 꼼꼼하게 덧칠된 화음이 예쁘게 이끌어가는 곡. 가만히 듣다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아련하게 스쳐갈 것 같다. 지친 어깨를 툭툭 두드려줄 것 같은 멜로디. 존과 폴이 공동으로 작곡했다. 역시, 둘의 합작이 좋다.

 

 

 

 

Track 13. If I Needed Someone

  4/4박의 느리지 않은 비트를 기반으로 장단조가 넘나드는 선율이 인상적. 일견 몽환적이면서도, 다양한 사운드와 결코 약하지 않은 리듬 덕에 곡 전체를 사로잡는 활발한 분위기도 감지할 수 있다. 곡 전반을 지배하는 인도풍 시타 소리가 실제 시타인지 기타를 비슷하게 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걸로 봐선 기타 쪽에 가까운 듯하다. 개인적으로 조지의 초창기 음악을 좋아한다. 후기 음악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 섣불리 단언해도 될까 싶다. 인도 음악에의 심취로 이어진 다소 이질적인 소리들과 더불어 사운드 자체에의 지나친 매몰...이, 그의 후기 음악 세계에선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멜로디와 사운드 양쪽에 두루 재능이 있던 멤버였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같고.

 

 

  p.s 1. 모처럼 집에 온 덕에 비틀즈 앨범을 실컷 돌려듣고 있다. 공교롭게도 연말을 청년 비틀즈와 함께 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송년회 겸 열렸던 국내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 공연에도 가볼걸 그랬다.

 

  p.s 2. 앨범 타이틀인 <Rubber Soul>은, 상당수의 비틀즈 앨범 타이틀이 그랬듯 해석이 난해하다. 굳이 말하자면 '가짜 소울' 정도 될까? 그나마 이 앨범명은 탄생 뒷이야기가 잘 알려진 편. 다소 엉뚱하지만, 당대 라이벌로 꼽히던 그룹이자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롤링스톤즈와 관련이 있다. 모 흑인 아티스트가 롤링스톤즈를 두고 "너희의 음악은 좋지만 너희가 하는 장르는 흑인의 진짜 소울이 아닌 가짜 소울(plastic soul)일 뿐이다"라 비판한 것을 두고 폴 매카트니가 영감을 얻어 지은 것. 탄생에도 나름 골계미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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