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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음악

두 장의 모차르트

by 디어샬럿 2015. 1. 8.

 

 

  모차르트는 들을수록 좋다. 한 치의 꾸밈 없고 티없이 맑은 소리들에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알록달록하면서도 심금을 무겁게 울리는 그 선율에 감히 누가 범접이나 할 수 있을까. 그의 음악은 형언조차 머쓱해지는 영롱하고 거대한 세계다. 듣고 있으면 경이롭기가 그지없다. 갓 세상을 접한 아이의 순수와 생을 통찰한 현인의 관조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음악. 바로 이이의 음악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음악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웅장하고 화창하면서도 비장하다. 역사의 물결을 이겨낸 적잖은 음악가 중에서도 천재라는 수식어가 허용되는 단 한 명의 위인이자, 삶에선 한없이 아이 같았지만 음악 앞에선 더없이 위대했던 사람. 오직 모차르트다.

 

  요즘은 새삼스러우리만치 모차르트 음악을 자주 듣는다. 사 둔 채 손도 대지 않았던 명반이 제법 있었다. 세상에, 이거 귀한 줄을 모르고 방치해뒀구나 싶다. 무관심했던 시간만큼 애정을 기울여 듣게 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음악들이다. 이왕 이런 거 이참에 다 듣자 싶어 칼 뵘 판 모차르트 교향곡 전집도 과감히 주문했다. 가격 때문에 몇 번이고 망설였는데 이렇게 홧김에 사게 될 줄이야. 국내에선 진작에 품절이라 아마존에까지 손을 뻗었다. 음반은 물 건너 한 달께나 지나야 올 터. 카라얀과 뵘의 모차르트가 주는 벅참으로 기다림을 상쇄하고 있는 날들이다. 미묘하게 다른 두 지휘자의 모차르트를 찾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외

 

 

  카라얀의 모차르트 음반인 <Eine Kleine Nachtmusik>.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했다. 1982년반을 디지털화해 재발매했다. 커플링으로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Holberg Suite)과 프로코피예프의 고전 교향곡(Symphonie Classique)이 수록돼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특유의 샛노란 바로크 문양에, 지휘봉을 잡고 특유의 손동작을 펼치며 눈을 감고 음악을 느끼는 카라얀의 모습이라니. 생명만 있다면 누가 봐도 나 클래식 음반이요 랍시고 어깨 쭉 펴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여느 음반가게의 클래식 코너에서 한 번쯤은 마주해 봤을 법한 포스터 같기도 하다. 특유의 압도감이 딱 카라얀 답다.

 

  시대를 잇는 교집합

 

  18세기의 고전파 모차르트와 19세기 후기 낭만파이자 국민악파인 그리그, 20세기를 산 현대음악의 산 증인 프로코피예프. 교집합을 연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음악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얼핏 떠올리기 쉬운 셋 사이의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데 놀라게 된다. 일종의 정형 내지는 전형이 음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렇듯 시기도 지향점도 다른 세 음악가를 이어주는 키워드는 '고전'이다. 클래식 내의 고전주의, 즉 "Classic in Classical Music". 그 공통점으로 1700년대와 1900년대가 소통하는 것이다.

 

  곡들에는 또 하나의 교점이 있다. '음악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80여 분의 음악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고전음악이라는 클래식에서도 만나기가 힘든 '온전한 음악'을 맛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악곡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이란 평가를 듣는 세레나데 13번, 즉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로 '클래식'의 향연이 시작된다. 그리그의 조곡(모음곡) 중 가장 고전주의에 근접한다는 홀베르그 모음곡을 지나, 표제에서부터 방향성이 드러나는 프로코피예프의 고전 교향곡으로 클래식은 절정을 맞는다. 곡에는 과도한 장중함과 둔탁한 무게감이 일절 배제됐다. 엄격하게 정형성을 지키며, 음의 영롱한 색채를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촘촘하게 직조돼 있지만 감정이나 격정이 개입해 있지 않다. 오직 음악을 조망할 뿐이다. 그 간결한 집중과 엄격한 조형이, 듣는 이를 한결 편안하게 한다.

 

  모차르트, 혹은 카라얀

 

  그 중 단연 빛나는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전형적인 카라얀 식 해석이다. 지긋이 눌렀다가 떼듯 말 듯 하는 카라얀 방식의 음들이 전곡을 채우고 있다. 분명 모차르트인데 카라얀이 들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음을 장식하고 정렬하는 카라얀의 통제가 읽힌다. 음의 틈틈이 카라얀이 배어 있는 느낌이다. 모차르트 자체라기보단 카라얀의 모차르트라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한 것 같기까지 하다. 상대적으로 모차르트를 음미한다는 느낌은 덜하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음악을 느끼고 싶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는 앨범이지만. 그럼에도, 작곡가보다도 도드라지는 카라얀 식의 개성이 그를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등극하게 한 점은 분명히 있다. 아이러니다.

 

 

# 칼 뵘, <모차르트 교향곡 35번-41번>

 

 

  칼 뵘의 모차르트 교향곡 35번부터 41번 녹음반이다.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 본디 35번과 38번, 40번과 41번 및 36번과 39번으로 음반이 따로 있던 것을 도이치 그라모폰이 하나로 합쳐 발매했다. 각각 1960년과 1962년, 1966년에 나온 바 있다. 재발매되면서 스테레오 음질로 업그레이드 된 덕에 음 손실이 크지 않다. 표지 디자인은 1960년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멋있는 표지를 2CD로 재발매하면서 이렇게 만들어놨다. 이전 앨범과 구분하는 동시에 전작을 기리는 의미랬다지만, 꼭 이래야 했니? (...)

 

  최고의 교향곡, 최고의 모차르트

 

  후기 모차르트 최고의 교향곡을 모아뒀다는 것만으로도 애호가들에겐 의미가 충분할 터. 여기에 뵘과 베를린필의 조합이니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음반은 기대 이상의 음악을 선보인다. 빈에 정착한 후 창작한 첫 교향곡이자 초기 모차르트의 흔적이 짙게 밴 사랑스러운 세레나데 풍의 교향곡 35번 D장조, 일명 '하프너 교향곡'으로 서막은 열린다. 우아하고 결이 고운 선율이 일품인 교향곡 36번 C장조, '린츠 교향곡'을 지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교향곡 38번 D장조, '프라하 교향곡'에 이르면 1CD의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2CD는 숨이 막힌다. 한층 중후하고 원숙해진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다. 시작부터 공기를 가득 메워오는 굵직하면서도 섬세한 선율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2CD에 수록된 39번부터 41번까지의 교향곡은 이른바 모차르트 3대 교향곡으로도 손 꼽힌다. 우아하고 밝은 선율에 보다 농익은 무게감이 깃든 교향곡 39번 E flat 장조로 시작된 여정은 곧 40번 G단조를 만난다. 너무나 익숙해서 숨을 죽이게 되는 그 멜로디. 짙은 비장감 속에 터져오를 듯 빛나는 열정이 손에 만져질 것 같은, 그 음악. 곡을 지배하는 장엄함 속에서도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섬세한 선율들에는 이내 놀라게도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주피터 교향곡', 41번 C장조. 거침 없는 서막 이후 맞는 고아하고 청아한 선율과 웅장하고 찬란한 진행이 부제와 이렇게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감동이랄지 격정이랄지, 뜨거운 공기가 가슴 가득 들어찰 때쯤 바이올린의 가파른 소리의 여운을 남기며 음악은 끝난다.

 

  모차르트, 그리고 모차르트

 

  내게서 칼 뵘 하면 곧 모차르트다. 거장 반열에 드는 이인 만큼 거의 전 음악에 통달했지만, 모차르트야말로 그가 가장 잘 구현하는 음악이다. 그의 모차르트 해석은 탁월하다. 크게 서두르지도 아주 느긋하지도 않은 박자감을 바탕으로 한 그의 모차르트 서사는 가히 완벽에 가깝다. 기분 좋은 빠르기를 기반으로 한 뵘의 모차르트에는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음이 없다. 꼼꼼하다 못해 깐깐하기까지 했던 생전의 성정처럼, 모차르트가 펼쳐내는 다채로운 음을 어느 한 구석도 빼놓지 않는다. 천상에서 모차르트를 만난대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유일한 지휘자라는 평을 들은 사람이라면, 말 다 한 셈이다.

 

  뵘의 해석은, 굳이 비유하자면 그림보단 건축에 가깝다. 음을 화려하게 그려내기보다는 건실하게 쌓아올리는 타입이다. 화가라기보단 건축가에 가깝다. 색을 입히는 것보다는 작품 자체에 주력한다. 그의 음악에는 무겁고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있다. 담백하면서도, 어딘지 학구적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학구열이 남달랐던 성향이 작용하는 지점 같기도 하다. 뵘의 음악에는 잠깐의 감이나 흥으로는 결코 나오기 힘든 깊은 울림이 있다.

 

  고민과 탐구의 결과일까. 그의 모차르트는 놀랍도록 중립적이고 완벽하다. 새털처럼 날아오를 듯한 음들은 창연할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다. 음악을 관통하는 비장함은 과하지 않게 흐르며 영롱한 음들을 뒷받침한다. 더없이 담백하면서도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이 단단하다. 뵘은 미묘한 중간을 찾아가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선율과 원대한 세계를 한 데 담아낸다. 음악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음악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인. "내가 화살을 쏜다"라기보단 "화살이 난다"고 했다던 어느 선승의 말이 연상되는 이랄까. 가장 모차르트 답지 않은 음악가가 그려내는 가장 모차르트 다운 음악이라니. 이 묘한 반어란!

 

 

 

 

  가장 좋아하는 건 교향곡 40번 G단조, 쾨헬 번호 550이다. 영상은 빈 필하모닉과 협연한 때. 현존 건물 중 최고의 음향시설을 자랑한다는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의 공연이다. 뵘의 모습으로 봐선 70년대 어드메인 것 같은데, 60년대에 녹음된 앨범 버전에 비해 박자가 살짝 처지는 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지병 탓에 이 즈음부터 뵘의 연주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그럼에도 음악과 해석의 색이 바라진 않는다. 격동적인 맛은 없어도, 그의 음악만큼이나 건실하고 견고한 지휘도 볼 만하다. 음악은 온 힘을 다해 말하는 듯하다. 비장함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다움도 이처럼 치열할 수 있다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40번도 참 괜찮다. 풍성한 음색이야 번스타인의 특장점이니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박자감이 가장 안정적인 축에 속한다. 모차르트는 이 곡의 1악장에 "Molto Allegro(매우 빠르게)"라는 빠르기말을 남겼다지만, 글쎄. 이상하게 모차르트 음악은 너무 빨라지면 무게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아르농쿠르라든지 요즘의 사이먼 래틀이 내 시점에서는 그런 지휘다. 급히 달려나가는 듯한 40번은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숫자가 명시된 게 아닌 탓에 지휘자들의 고민도 비슷할 테지만. 그저, 내겐 딱 이 정도가 모차르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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