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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11

Rubber Soul, 전설이 된 청년들의 낭만을 찬양하며 지금보다 약간 덜 추운 때, 이를테면 늦가을 정도 될까. 11월 초순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덜 여미어진 옷깃 틈새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훅훅 들어오는 때, 맵싸한 공기에 그만 양 볼이 얼얼해지기 시작하는 때, 그맘때면 으레 생각나는 게 이 앨범이다. 1965년 12월 초에 출시된 비틀즈의 6집 앨범 Rubber Soul. 그즈음의 영국 공기만큼이나 칙칙하고 짙은 녹빛의 앨범 자켓이 인상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을 앞둔 알싸한 바람이 코 끝을 맵게 스칠 것만 같다. 컷을 눈으로 스윽 훑자마자 비정상적이게 크고 선명해서 장난스러운 듯도 한 타이틀이 시야에 들어온다. 알알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멋지게 골려주려 작정이라도 한 듯 떡하니 붙어있는 양을 보면, 이렇게나 다른 느낌들이 이토록 어울리기도 어지간히 .. 2014. 12. 30.
잠들기 전 눈에 내려앉는 무게를 문득 느끼니 자정 전이다. 하루를 넘기기 전에 찾아온 잠이라니. 녀석이 제 시각에 와 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수면의 나른한 불길에 노릇하게 익은 의식의 단면을 무의식의 면으로 뒤집으며. 모처럼 제때 맞는 황홀경에 접어들 준비를 한다. 꾸역꾸역 감기는 살점으로 건네는 몽롱한 세계에의 기묘한 인사와, 오랜만에 맞는 기분 좋은 피로감. 2014. 10. 8.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의 기미. 잊을 만하니 찾아왔다. 며칠 아슬아슬하더니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모양이다. 어젯밤부터 가시가 콕 박힌 듯 목이 따끔거리더니, 마침내 코와 머리까지 감기 바이러스에 항복하고 말았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대책없이 흐르는 콧물과 뒷덜미를 꽉 누르는 듯 갑갑한 두통. 에어컨 한 번 쐬지 않은 여름이건만 억울하게 웬 감긴가 싶다. 이렇게 된 거 왕창 틀어버릴까 하다가 전기세 생각하니 손이 떨려 그만둔다. 아니야 머리 아픈 건 어쩌면 당분이 떨어진 탓인지도 몰라 하며, 신물나게 진한 핫초코라도 마시고파 듣는 Savoy Truffle. . . . 들을 만한 다른 버전이 있나 찾아보니 맙소사! 엘라가 부른 게 있다. 고혹적인 음색으로 우아하게 디저트 이름을 무한나열하는 재즈거장이라니, 뭔가 웃기면서.. 2014. 7. 29.
능소화는 잘못없다 [연합뉴스] "능소화 꽃가루가 실명 초래?"... 유해성 논란 : http://bit.ly/1r0TIhg -- 그 무렵 그는 곧잘 능소화를 타고 이층집 베란다로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창문은 검고 깊은 심연이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심연에 도달하지 못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전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심연에 도달하지 못한 미진한 느낌은 쾌감인 동시에 공포감이기도 했다. 현금의 창은 꿈속에서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심연이었고, 현실에서는 이 세상 비밀을 다 삼켜버린 것처럼 깊고 은밀해서 그는 울고 싶도록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마침내 사춘기였다. - 박완서, .. 201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