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7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군사훈련이나 전쟁놀이 같았다. 하지만, 진짜 전쟁이었다. 핵전쟁……. 뭐가 무서운지 무섭지 않은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진짜 피난이 시작됐다. 기차역, 기차역은 엉망이었다. 기차 창문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질서를 잡고 줄을 세웠다. 매표구에 선 줄과 약국에 요오드를 사러 온 줄.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서로 욕하면서 싸웠다. … 우리 속옷을 빨아주던 아주머니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미리 세탁기 생각을 못 해서 결국 안 가져왔다. 손빨래를 해야 했다. 아주머니들은 다 나이가 많으셨다. 손이 물집과 부스럼으로 뒤덮이셨다. 빨래는 그냥 더러운 옷이 아니라 수십 뢴트겐에 노출된 옷이었다. “젊은.. 2015. 11. 2.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 진열창 안에는 시계가 열두어 개 있었는데, 그 열두어 개의 시간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시곗바늘이 없는 내 시계처럼 저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양립하지 않는 확신에 차 있었다. 서로 틀리다고 반박했다. (p.113) -- 시계는 시간을 죽인다는 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톱니바퀴들에 의해 째깍째깍 기록되는 한 시간은 죽은 것이며, 시계가 멈출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살아난다고 했다. (p.113) -- 다시. 존재의 과거형보다 슬픈 말. 다시. 무엇보다 슬픈 말. 다시. (p.128) -- 고향에서 팔월이 끝나갈 무렵이면 이런 날들이 있다. 이렇게 산소가 희박하고 열망으로 가득한 날들이, 서글프고 향수 어린 친숙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날들이. 아버지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기후의 총합이라고 .. 2015. 10. 19. <순교자>, 김은국 출간 후 20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동시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올랐었던 이 ― 라는, '전설'로만 들었던 작품이자 작가였다. 영어로 쓰인 책이라 한국문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인 역작이다. 배경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중공군 개입 직전 국군 통치기의 평양. 공산당 비밀경찰에 의해 사살된 열두 목사와 와중에 살아남은 신 목사(+한 목사) 사이의 '진실'을 중심에 두고 책은 다양한 논제를 펼쳐낸다. '진리'를 위해 사건에 굳게 입을 닫은 신 목사, '대의'를 위해 진실을 숨기려는 장 대령, 진실은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 된다는 이 대위. 이 세 인물의 갈등이 핵심주제를 형성해간다. 여기에 처형된 목사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최후를 알고자 하는 박 군(.. 2015. 8. 28. 전쟁 ::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친한 친구로서 한마디 묻겠는데, 자넨 왜 전쟁에 뛰어들었지?" "왜?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어야 하나?" 게리넬도 마르케스 대령이 말했다. "물론 난 위대한 자유파를 위해서 싸우고 있어." "싸우는 이유를 알고 있다니 자넨 참 행복한 사람이야." 그는 말했다. "그런데 내 얘기를 한다면 말이야, 난 그저 자존심 때문에 전쟁을 하고 있다는 걸 이제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어." (pp.151-152) --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 (p.179) -- 전쟁의 .. 2015. 8. 2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