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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편린 사이/책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by 디어샬럿 2015. 11. 2.

 

 

 

 

--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군사훈련이나 전쟁놀이 같았다. 하지만, 진짜 전쟁이었다. 핵전쟁……. 뭐가 무서운지 무섭지 않은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진짜 피난이 시작됐다. 기차역, 기차역은 엉망이었다. 기차 창문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질서를 잡고 줄을 세웠다. 매표구에 선 줄과 약국에 요오드를 사러 온 줄.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서로 욕하면서 싸웠다. …

 

  우리 속옷을 빨아주던 아주머니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미리 세탁기 생각을 못 해서 결국 안 가져왔다. 손빨래를 해야 했다. 아주머니들은 다 나이가 많으셨다. 손이 물집과 부스럼으로 뒤덮이셨다. 빨래는 그냥 더러운 옷이 아니라 수십 뢴트겐에 노출된 옷이었다. “젊은이들, 좀 먹어.” “청년들, 좀 자둬.” “아직 나이도 어리잖아요. 조심해요.” 안타까워하셨고 우리를 위해 우셨다. 지금은 살아 계실까? (p.121)

 

 

 

-- 첫째 날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멀리서만 봤다. 이튿날에는 그 주변의 쓰레기를 치웠다. 양동이에 담아 날랐다. 평범한 삽으로 파고, 청소부들이 사용하는 빗자루로 쓸었다. 수세미로 닦았다. … 말하자면 핵을 삽으로 푼 거다. 20세기에……. 거기에서 사용되던 트랙터와 불도저는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 뒤를 쫓아다니며 잔여물을 치웠다. 그 먼지를 들이마셨다. …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다. 기밀유지 계약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말해도 된다고 했다고 쳐도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제대하자마자 2급 장애인이 되었다. 스물두 살이었다.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 사장이 말했다. “계속 아프면 자를 거야.” 결국 해고됐다. 사장을 찾아갔다. “이러실 수 없습니다. 저는 체르노빌에서 일했어요. 여러분을 구했다고요. 보호했다고요!” “나는 너 거기 보낸 적 없어.”

 

  밤마다 어머니 목소리에 깬다. “아들,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잠도 안 자잖아. 뜬 눈으로 누워 있잖아. 불도 켜져 있고…….” 나는 침묵한다.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대답할 수 있도록 나와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나의 언어로……. 나는 외롭다. (pp.128-129)

 

 

 

-- 나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 자체는……. 하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모른다. 친구가 죽을 때 몸이 부어올라 드럼통처럼 커졌다. 옆집 사람, 그도 거기 있었다. 크레인을 운전했다. 그는 숯처럼 까매지고 어린아이처럼 야위어갔다. 나는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평범하게 죽고 싶다. 체르노빌 식 죽음이 아닌 평범한 죽음……. / 군인의 합창 (p.129)

 

 

 

--  꽃피는 사과나무를 발견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땅벌이 윙윙거렸고, 꽃은 순백의 신부를 닮은 흰색이었다. 이번에도 보니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과수원에 꽃이 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유가 뭔지 몰랐다. 노출도 정상이었고 그림도 예뻤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냄새가 안 났다. 과수원에 꽃이 피는데, 냄새가 없었다! 고준위 방사선이 생체에 작용해 특정 기관만 정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 일행에게도 물어봤다. “사과나무 냄새가 어때?” 셋이 함께 왔는데, 아무도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고 했다. 우리한테 뭔가 일어났다. … 그러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가짜 같았다. 세트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 세르게이 구린, 카메라 감독 (p.168)

 

 

 

-- 저는 아이들에게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데, 이 아이들은 10년 전의 아이들이 아니에요. 항상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무언가를, 아니면 누군가를 묻어요. 땅에 가둬요. 아는 사람들을. 집과 나무를. 모든 것을 묻어요. 아이들은 조회 시간에 15분, 20분만 서 있어도 기절하고 코피를 흘려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봐도 놀라거나 즐거워하지 않아요. 항상 졸리고 피곤해요. 안색이 잿빛이고 창백해요. 놀지도, 장난치지도 않아요. 혹시 싸워서 창문이라도 깨면 선생님들이 기뻐할 정도예요. 아이들을 혼내지도 않아요. 그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거든요. 그리고 정말 느리게 자라요. 수업 때 따라 하라고 하면 못 해요. 한 문장씩 반복하라고 불러줘도 기억을 못 해요. / 니나 (pp.179-180)

 

 

 

-- 처음에는 모두 ‘재난’이라고 했고, 나중에는 ‘핵전쟁’이라고 불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무서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핵전쟁, 폭발범위. 머릿속으로 상상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한테 일어난 일은 그것까지 이해하기엔 부족했다. 내 지식이 부족했다. 내가 평생 읽은 책으로도 부족했다. … 한 과학자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수천 년은 갈 겁니다.” 그가 설명했다. “우라늄이 붕괴하려면 238번 반감해야 하는데,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억 년입니다. 토륨의 경우 140만 년입니다.” 50, 100, 200년. 그 이상이라고? 그 이상은 충격이야! 그때부터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 / 아나톨리 시만스키, 기자 (pp.189-190)

 

 

 

-- 구역으로의 첫 방문. 거기로 가는 길에, 모든 것이 회색 재로 덮여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까맣게 그을린 채로. 브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을 떠올렸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황홀했다! 봄의 초원에 꽃이 폈고, 숲의 녹음은 부드러웠으며 봄 향기를 내뿜었다. 나는 이 계절을 정말 좋아한다. 모든 것이 되살아나고, 자라며 노래하는.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어울림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였다.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 / 게나디 그루세보이, 벨라루스 의원 (p.203)

 

 

 

-- 체르노빌의 사건일지는 없다고 보면 되오. 촬영을 못 하게 했고, 다 비밀에 부쳤소. 누군가 뭐라도 찍기만 하면 관련 기관에서 곧장 그 자료를 압수하고 못쓰게 된 필름만 돌려줬소. 주민을 어떻게 대피시켰는지, 어떻게 짐승을 데리고 나왔는지에 대한 기록물이 없소. 비극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됐고, 영웅만 촬영하도록 허락해줬소. 결국에는 체르노빌 영상물이 제작되었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카메라가 부서졌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국에 불려 다녔는지! 체르노빌에 대해 솔직히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용기가 필요하오. /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소볼례프, 공화국 협회 <시트 체르노빌류> 부대표 (p.241)

 

 

 

-- 그 일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날 밤에 일어났어요. … 아직도 내 눈 앞에 진홍색 빛이 보이는 듯해요.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불이 아니라 광채 같은 것이 났어요.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하면 매우 아름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 우리 집은 9층이라 정말 잘 보였어요. 직선으로 3킬로미터 정도 거리였어요.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을 들어 올리고는 “잘 봐! 기억해 둬!”라고 말했어요. 함께 보던 이들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기술자, 직원, 물리 선생님도 있었어요. 까만 먼지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얘기했어요. 숨 쉬었어요. 구경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한 번 보려고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렇다고 해서 냄새도 안 났다는 건 아니에요. 봄이나 가을 냄새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지구의 냄새가 아니었어요. 목이 따갑고, 눈물이 절로 흘렀어요. …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주위를 돌아보자, 뭔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날 후나 지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때 그렇게 느꼈어요. 영원히 바뀌었다는 기분……. / 나데즈다 페트로브나 비곱스카야, 전 프리퍄티 주민 (pp.263-264)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측정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켜니 고르바초프가 국민을 안심시키는 중이었다.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나는 믿었다. 물리의 법칙을 잘 아는 20년 경력의 공학자인 내가 그 말을 믿었다. … 우리는 믿는 데 익숙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자란 전후 세대다.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

 

  왜 알고도 침묵했느냐고 물으셨는데, 여기 답이 있다. 왜 광장으로 뛰쳐나가 소리 지르지 않았는가? … 당원증을 뺏길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아름답고 정의롭게 살며, 우리가 만물의 중심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믿음이 깨지면 많은 이들이 뇌졸중에 걸리거나 자살을 한다. … 왜냐하면 믿음을 잃고 믿음 없이 남으면, 그 사람은 참가자가 아니라 공범자가 되고 변명할 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 마라트 필립포비치 코하노프,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선임 연구원 (pp.278-279)

 

 

 

-- 시골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요. 그들은 아이처럼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통을 당했어요. 체르노빌은 농부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에요. 100년, 1천 년 전과 같이 농부는 자연과 서로 신뢰하는 특별한 관계였지, 약탈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자나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치 성직자를 신뢰하듯 믿었어요. 그런 그들을 기만했죠. “다 괜찮아. 무서울 거 없어. 밥 먹기 전에 손만 씻으면 돼.” 그때는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 조야 다닐로브나 브루크, 환경보호 감독

 

 

 

-- 원자로 주변에서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했다는 말을 들었다. 특별허락을 받아야만 찍을 수 있었다. 사진기를 빼앗아 갔다. 군인들이 그곳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한 장이라도 사진이 찍혔을까? 마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수색했다. 아무런 증거도 가져갈 수 없었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오면 KGB가 필름을 가져갔다. 그리고 빛을 쏘여 못 쓰게 된 필름을 돌려줬다. 얼마나 많은 문서가, 증거가 파기됐는지. 과학을 위해서도, 역사를 위해서도 쓰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그런 걸 지시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 이리나 키셀레바, 기자 (p.355)

 

 

 

-- 아무도 우리말을 안 들었다! 우리 학자, 의료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과학은 정치를 섬겼고, 의학도 정치를 끌어들였다. 당연지사였다! 10년 전 사고 당시 우리 사회가 어떠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비밀 수사기관인 KGB가 활동했다. ‘서쪽의 음성’은 꺼트려 졌다. 금기사항, 당과 군사의 기밀이 수천 가지였다. 훈령이 흘러넘쳤다. 거기에다 모든 사람이 소비에트의 평화적인 핵은 이탄이나 서탄만큼 안전하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우리는 두려움과 편견, 미신으로 억압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사실만이……. (pp.358-359)

 

  핵 전시 훈령에 따르면 핵사고, 핵 공격의 위협이 발생하면 바로 국민을 대상으로 요오드 치료법을 시행해야 한다. 위협이라고 했다. 여기는 이미 방사선 수치가 시간당 3천 퀴리였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권력을 걱정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닌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없다. (p.361)

 

  그들은, 그러니까 위원회 대표부는 요오드를 복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연구소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모두 갑상샘이 깨끗했다. 요오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식들도 조용히 어디론가 재앙으로부터 먼 곳으로 보냈다. 자기들은 답사를 갈 때 방독면에다 방호복까지 갖춰 입었다.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없던 것이었다. (p.362)

 

  나중에야 알았다. 신문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를 얼마나 빠르게 지었는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소비에트 식으로 건설했다. 일본은 이런 시설을 12년이나 걸려야 세울 수 있지만, 우리는 2~3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 하지만 부족한 자재가 발생하면 설계는 무시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걸로 대체했다. 그래서 터빈건물의 지붕이 아스팔트로 덮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지붕에 난 화재를 소방대원들이 진압했다. 또 원자력 발전소 관리는 누가 했는가? 지도부에 핵물리학자가 한 명도 없었다. 동력기사, 터빈기사, 정치부원은 있었지만,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물리학자가 한 명도 없었다.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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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전직이 기자였던 여류작가이자 벨라루스 출신(네이*에서 검색하면 우크라이나 출신이라 나오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다). 문체도 간결하고 무엇보다 문제의식이 뚜렷하다. 이런 류의 기록물이 좋다. 참고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슷한 작품도 참 괜찮았는데. 그도 이쪽 장르를 심도 있게 다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겠단 생각도 잠깐.

 

  작가는 스스로의 장르를 '노블-코러스'라 칭한단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목소리 문학'이다. 감각적이면서도 힘이 있다. 시간이 나면 이 작가에 대해 좀더 깊이를 갖춘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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