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7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보이곤 했다. …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 2015. 8. 28. <거짓의 날들>, 나딘 고디머 『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기억의 작동, 어쩌면 그것은 욕망의 시작이며 어린 시절의 끝인지도 몰랐다. 기억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것을 원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하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고 결국 나이가 들어가면서 희미해지는 갈망이라고나 할까. 』(p.100)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은 묘했다. 공기가 잡힐 듯 말 듯 했다. 무언가 몽글몽글 그려지기 시작한 건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우울한 사춘기의 기록. 가만히 떠올린 이 책을 향한 인상은 그랬다. 책장마다 스민 불안이 한낮에 흐르다 식은 땀처럼 끈적끈적 눌러붙어 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파동이, 책을 돌아나가고 있었다.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기에 가깝다. 그다지 유난스러울 것 없는 사춘기.. 2015. 7. 28. 애정이란 무엇인가 :: <홍까오량 가족>, 모옌 애정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해답이 따로 있을 터이다. 그 귀신 같은 애정이란 것은 무수한 영웅과 미녀들을 시달리게 했다. 할아버지의 연애 역사와 아버지의 범람한 애정과 나 자신의 창백한 애정의 사막을 근거로 삼아서 우리 삼대의 애정에 적합한 강철 같은 규칙을 연역해보자면, 미친 듯한 애정을 구성하는 첫 요소는 바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며, 찔린 심장에서는 송진 같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린다. 그리고 애정의 고통으로 인해 위장에서는 선혈이 흘러나오고, 소장과 대장을 거쳐서 기름 덩어리 같은 커다란 대변으로 만들어져 신체 외부로 배출된다. 잔혹한 애정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무정한 비판이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애를 쓴다. 생리적 리듬의 껍질과 마음의 껍.. 2015. 6. 1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