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순간

무지몽매

by 디어샬럿 2019. 5. 12.

아주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별안간 낯설다.

-

불현듯 사랑이 모호해졌다. 사랑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챙겨주고 싶은 마음? 어떤 형태로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나를 다른 이들보다 특별하게 아껴주길 바라는 마음? 자꾸만 생각나고 궁금해지는 마음?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에는 진절머리 나도록 정통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생각하려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랑이 무어냐는 질문의 벽에 가로막힌 나는, 세계에 입성하지 못한 이방인마냥 온종일 그 언저리만 서성이고 있다. 도대체 사랑이 뭘까. 타인과 타인이 만나 온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게 가능은 하다는 말인가.

아주 사랑했던 - 혹은 그렇다고 믿었던 -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느 시점에서 뜬금없다시피 솟아올라 강렬한 열기로 내 좁디좁은 지평을 들뜨게 한 인연들. 그러나 시간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간, 찰나들에 풍화되고 더러는 새로운 누군가에 침식된 언젠가의 그들을, 날이 갈수록 빈약해지는 기억의 퇴적토를 되짚어 간신히 그려내 봤다. 놀랍도록 선명하게 돋아오르는... 몇을 제외하면 이젠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이들이다.

-

나는 그를 사랑했던가.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그를 향한 어떤 마음으로 인해, 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정의했던가. 분명 나의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지점들을 하나하나 들추면 이걸 정녕 사랑이라 말해도 좋은 것인지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그 마음 역시 결국은 내 프리즘에 대고 해석해 버린 그를, 아끼고 애틋해했으며 함께하며 지켜주고 싶었고 품어주려 했던 따위를 -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과 행위들의 총체를 -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였기에 사랑이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 마음들을 정의 내지는 의미의 틀에 욱여넣으려니 꾹꾹 차올랐던 뜨거운 공기가 거짓말처럼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걸 사랑이래도 되는 걸까. 어쩌면 나 역시도 오롯한 타인으로서의 그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던 건 아닐까.

그는 나를 사랑했던가. 완전한 착각이었나. 당신의 사랑은 무엇이며, 남자의 사랑은 무엇인가. 여자의 사랑을 뭐라 말해야 하며, 나의 사랑은 또 무엇인가.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나야말로 사랑에 너무 오만했었나. 이 지경인데도 나는 왜 사랑을 잘 안다고 믿었던가. 내 삶의 화두가 사랑이었대도 과언이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사랑에 무지한가. 사랑은 이렇게까지 치명적이고 기습적이게도 허무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토록 무방비한가.

-

딴엔 묵직했던 진심이었건만 어떤 상황의 누군가에게는 대체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은 어느 저녁의 한복판에. 말로 전해지지 않은 마음이란 공허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철저하고도 처절하게 깨닫는 어느 시간의 주름에. 내가 아니라 단지 그 자리의 어떤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퍼즐'을 끼워맞추고야 만 어느 슬픈 각성에. 그리고 삼십 여 년의 무지를 느닷없이 깨달아버린 어느 착잡함의 끝에...

'비밀의 화원 > 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  (0) 2020.08.05
아직도 어려운  (0) 2019.09.03
행복을 비는 마음이란  (0) 2019.03.25
하늘로 날아간 보라색 나비  (0) 2019.02.02
그 아이네 집  (0) 2019.01.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