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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조심해야 하는 사람

by 디어샬럿 2020. 2. 26.

요 며칠 내 일상의 절반은 '타자-되기'의 실사 체험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마치 라캉의 수제자라도 되는 양 충실하고 올곧게 내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엄밀히 말하면 라캉 식 타자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어딘지 처량하기까지 한 작업이었지만 타인이 되어보긴 되어본 것이니 말이다. 문제는 타인의 삶을 투영하느라 나의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실망하고 좌절하고 지쳐 마감하는 하루의 앞에서, 나는 불과 몇 달 전의 모든 것들을 돌이키고 있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최후의 방패막이었을 줄은. 그 마음을 몰랐고, 그 상황을 몰랐다.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생각한다. 그 고마운 마음과, 이제야 윤곽을 드러낸 또 다른 마음을.

나는 이따금 '겪는 게 최선'이라며 타인의 말보다 내 경험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대학친구였던 S는 경험의 배반이 주는 타격을 일러 준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요사이 나는 S의 경고를 떠올릴 적이 많다.

이제 안다. 말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세상엔 내가 겪지 못한 범주의 사람이 너무나 많고, 나와 '근원적으로'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 이 작은 땅에도 빼곡하다. 스스로도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이용하면서도 심지어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안타깝게도 그런 부류의 '진정성'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서조차도 몇 발자국 떨어져야 간신히 보일 따름이다. 시간의 곡절은 어쨌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몰랐다, 이제야 어렴풋이 안다. 세상에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심"해야 하는 부류들이 있다. 드넓은 '조심'의 경계를 잘 딛고 살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그런 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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