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일상

어떤 시간

by 디어샬럿 2020. 1. 12.

꿈을 꿨다. 눈을 뜨고선 잠시 멍했다. 대개의 내 꿈은 굴절이 심한데, 오늘은 현실과 너무 딱 맞아떨어져 조금 서글펐다. 장면들을 곱씹다가, 숨겨둔 생각들과 마주했다. 나의 가장 못난 것들이 통제되지 못했던 며칠이었다. 나는 잠식당했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타인의 자기장에 너무 무방비했다. 마음이 텅 비어버려 타인의 중력에 이리저리 휘둘린 날들이었다.

중력을 잃은 존재 한가운데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비수들이 내리꽂혔다. 서운하고 서글픈 건 지극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여태껏 받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전해지지 못한 - 내게 왔어야 하나 타인에게로 향한 - 말들이 떠올랐다. 언어의 표면에 천착하느라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마음들을 하나하나 그렸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은 진심들을 마주했다.

나는 왜 여전히 이렇게 어릴까. 오후 내내 울었다. 받은 게 많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금세 깨달아야 하는데, 사건과 각성 간 시차가 좀체 줄지 않는다. 너무 못났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 다방면으로 다치게 했다. 설령 정말 변해버린 마음이어도, 이미 받은 것만으로 이해해야 했던 것을.

마음이 흐렸던 며칠이었다. 못난 판단과 생각이 다 그 탓이었다. 그 마음 하나하나가 오직 나만 생각한 결과다. 나이까지 먹었는데, 정초부터 못났었다. 더 넓게, 더 낮게, 더 단단하게 이 시간을 건너가야지. 어떤 형태로든 나는 늘 받고 있다. 나의 건넴이 받음만 못한 데 죄송해야 할 일이다. 그리하시어도 괜찮은 시간, 그리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나로선 어떻게든 감사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 낙화 후에야 봄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두를 사랑해야지. 울컥울컥 밀려드는 기억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이 순간까지도.

'비밀의 화원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월식 사고  (2) 2020.02.10
B와 D 사이  (0) 2020.02.04
홀가분 지수 20%  (0) 2019.10.17
내 것의 힘  (0) 2019.08.29
조금이 만드는 지금  (0) 2019.08.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