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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by 디어샬럿 2017. 1. 29.


지극히도 평균적(이라고, 요즘은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이고 전통적인 설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날은 대청소에 음식 준비로 오롯이 하루를 썼고, 해가 새로 뜨고선 차례를 지내고 성묘간 팀을 대신해 뒷정리조를 맡았다. 최대한 움직이고 이야기했다. 오장육부에 남은 잔 에너지 하나라도 다 끌어쓰자는 마음이었다. 목표는 단 하나다. 오직 잠, 수면, 숙면.

달에 한 번은 잠 때문에 며칠 고생한다. 영문도 모르게 동 트기 직전까지 잠을 못 이루는 날을 맞는다. 그런 하루면 내내 잠 아닌 듯한 잠에 몸이 꽁꽁 매여버리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잠이 조금만 부족해도 머리가 울릴 지경인데, 아예 자지 못한다는 건 정말이지... '괴롭다'는 말을 직전에 앞둔 그 어느 지점의 감정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신경을 벼리는 기분이다. 게다가 이달은 오늘로써 내리 사나흘째다. 새벽 5시에 간신히 잠들어도 날이 밝자마자 곧 깨어버리는 일상. 작년 말 독감 이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던 커피를 홀짝인 게 화근이었을까. 심지어 어젠 지끈거리는 머리를 견디며 피로의 극한까지 몸을 밀어넣었는데도, 또 잠의 문턱 멀찍이 떨어진 부근서 한참을 서성이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잠에 조금 예민한 타입이 되어버렸다. 10대 때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미래다. 내 잠은 대차고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8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온종일 의식이 긴장을 늦춘 틈을 침투해 들어왔다. 11시만 넘어도 눈꺼풀에 하루의 덩이가 내려앉곤 했다. 십여 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흥미로운 말들과 책들과 이야기들과 공부들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잠을 미뤄둬버릇 한 게 20대 초반이었고, 합성MDF 소재의 얇디얇은 벽 사이로 들려오던 옆방의 별의별 소리를 따라 달음쳐버린 잠을 좇던 게 20대 중반이었다. 그 시간들을 건너고 나니, 내 잠은 와야 할 때에도 발걸음을 드러내지 못할 적이 빈번한 내성적인 손님이 되고 말았다. 들어오라 들어오라 손짓을 해도 의식의 제자리에서 빙빙 헛걸음만 도는 격이랄까. 이루지 못할 적의 나의 잠은 무의식으로의 엷은 막을, 얕은 수면을 뚫지 못한 채 그 바다에서 부침만 거듭하고 만다. 일보후퇴하고 활자를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새 새벽의 끝자락. 그제서야 떠나는 새벽을 절박하게 붙잡으며, 잠은 허겁지겁 찾아와 눈두덩에 깃드는 것이다.

오늘은 꾸역꾸역 참았는데, 엉뚱한 때 쏟아지는 녀석에 굴복해 그만 초저녁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니 설 특선영화가 한창이다. 옆엔 <안녕 주정뱅이>가 희뜩하니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이를 어쩌나, 생각 속에서 발을 구르다 에잇 모르겠다며 펼친 배부터 차곡차곡 권여선을 읽어나가기로 한, 아마도 잠들기가 또 조금 힘들지도 모를 정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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