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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일상

이렇게까지 해야 돼?

by 디어샬럿 2017. 1. 26.

 

엄마가 대뜸 핸드폰을 드밀었다. 의미를 찾으려는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설이잖아, 우리 대학원 조교한테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려구. 그러고 보니 아침에 엄마로부터 그런 메시지가 오긴 했다. 카톡 대화입력창 옆 더하기 버튼 눌러서 선물하기 들어가면 돼. 답을 보냈는데 잘 안 됐는지, 엄마는 저녁에 집에서 해보자셨다. 봐, 이거 쉬워. 이렇게 눌러서, 음 뭐 선물할 건데? 학교 근처에 빠리바게트 있으니까 거기서 살 수 있는 거 하자. 그럼 이거 할까? 좋네. 초코맛과 모카맛이 정확히 반씩 나뉜 롤케익을 클릭하고 간편카드결제 단계로 넘어갔......어야 하는데, 약관에 동의하란 창이 자꾸 뜬다. 아뿔싸,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엄마가 일개 메신저에 이런 걸 입력할 리가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같은 롤케익을 선택하고, 이번엔 일반 카드결제. 또 같은 창이다. 엄마 아직 스마트폰에 카드 안 깔았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처음이다. 핸드폰결제를 클릭했다. 빈칸을 충실히 입력하고 동의하란 것들에도 체크체크 행진을 했다. 조금 기다리니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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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돼?

같은 작업만 세 번째. 결국 목울대에 숨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불만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이건 뭐 말만 동의네. 엄마에게 가 닿지 않으려 조심하며, 나는 동의서란 이름을 감히 단 강요서에 애먼 투덜이를 했다. 롤케익은 결국 내 핸드폰에서 결제됐다. 쿠폰을 사진 파일로 다운받아 엄마께 전달했고, 엄마는 쿠폰을 조교에게 전해주었다. 그 사이 나는 눈을 스치듯 달려간 약관 문항들을 떠올렸다. 제3자 정보이용권 제공 동의, 특정 상황 시 통신정보 요청 동의... 하나하나 뜯어보면 섬짓해지는 단어들이다.

말이 띄운 거품을 뜰채로 싹 걷어내면 메시지는 더욱 명징해진다. 네 정보는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것. 정보 통제권의 이양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뭘 샀는지, 누구와 자주 이야기를 하며 누구에게 주로 선물을 건네는지, 심지어는 언제 집중적으로 선물하는지까지. 몇 번의 호의를 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담보로 내놓아야만 한다. 이용자의 효율적인 소비를 돕겠답시고 회사들은 너무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동의서를 들이민다. '맞춤추천' 배너를 단 각종 광고와 콘텐츠들은 알고 보면 얼마나 무서운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가. 수많은 동의들을 딛고, 회사들은 비슷한 취향을 지닌 이들을 범주화한다. 당신에겐 이 제품이 어울립니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이미 샀으니까요. 당신과 닮은 사람들을 우린 이미 너무 많이 겪었어요. 다 모아서 분석했다니까요. 후회 없으실걸요? 자본주의 시대의 소비는 인간의 일과와 취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한다. 소비로써 우리는 매 순간 은행과 카드회사에 우리의 동선을 일러바치는 꼴이다. 소비를 통한 의도치 않은 '고해'가, 이젠 메신저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이다. 취미와 식성과 일상도 모자라 내밀한 대화와 관계들마저, 알 수도 없는 이들의 손에 의해 나도 몰래 자백되는 과정이라니.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을 생각한다. 혹은 <1984>의 빅 브라더가 덧씌기도 한다. 판옵티콘은 가운데 높이 선 간수의 공간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진 죄수들의 방을 구현한 '최적의' 감시 공간이다. 빅 브라더 역시 사회 혼란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텔레스크린으로 사람들을 감시한다. 효율을 앞세워 개인들을 추적하는 사회라 할 만하다. 현대 혹은 미래사회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뭔가 거대한 것들의 판옵티콘 혹은 빅 브라더화를 우려했었다. 이를테면 정부나 범국가조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최근의 소비-고해 매커니즘은 판옵티콘과 빅 브라더보다 훨씬 은밀하고 조밀하다. 게다가 세련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자연스럽단 말조차 새삼스러울 정도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헌납한다. 동의 조항과 빈칸들은 집요하게 소비자에게 입력을 요구하고, 우리는 딱히 생각할 겨를도 뜻도 없이 충실히 체크박스를 채워나간다. 별 거부감도 없이 우리는 삶의 궤적을 고해바친다. 매커니즘의 궤적이 우리를 앞지르는 일도 빈번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찰나의 의심과 불안은 한 번의 귀찮음 이후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소비들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기의 편리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성문을 열어준 셈이다. 역시 편해서 좋다며, 여기저기의 동의 '강요서'에 또 손가락 도장을 남긴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뒤를 훑는 사회다. 쓴소리 한 번 달갑지 않은 영화 한 편 살풍경 현장의 글 한 줄 남겼단 이유로 까만 목록에 이름이 오르는 시대다. 메신저나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는 동의라도 구하지. 약관 한 자 덧붙지 않은 그네들의 살생부에 치가 떨린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돼? 쏟아지는 날것의 활자와 영상들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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